고려왕조의 꿈 강화 눈뜨다 / 28 정교한 아름다움, 고려의 공예


지난 2004년 초. 인천시립박물관은 강화도 창후리 청소년유스호스텔 부지에 대한 문화유적 시굴조사를 벌였다. 이 지역은 2002년 9월 문화재 지표조사 결과 석곽묘 1기를 포함, 고려, 조선시대 고분이 발견된 곳이었다. 하점면 창후리 산143번지 일대 9천930㎡(약 3천평)를 대상으로 벌인 시굴 결과 2개의 토광묘가 확인됐다. 이들 무덤에선 원우통보, 동국통보 등 4개의 동전이 나왔다. 또 청자, 백자접시, 대접과 편, 도기편, 철제 가위편 등과 흑갈유병과 발, 청도수저편이 함께 묻혀 있었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동경, 즉 거울이었다. 동경의 뒷면엔 줄을 거는 고리인 '뉴'가 한 개 있었으며 뉴를 둘러싸고 두개의 방형이 엇갈려 배치돼 있었다. 초화문 같은 문양과 네 귀퉁이의 공간에 나비무늬(접문)도 보였다.
 

   
▲ 강화 창후리 출토 청동거울 뒤편


앞서 2007년 강화도의 왕릉인 가릉, 곤릉, 능내리석실고분에서도 금속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옥제새장식과 같은 장식품들이었다. 주술적 목적을 위해 시신과 함께 매장한 동전과 이를 보관하는 함, 시신을 안치하는 목관에 사용한 장식과 관정 등 금속유물들은 800년간 묻혀 있는 동안 부서지거나 썩어 있었다. 석실과 벽석에 사용해 휘장 등을 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걸개용 철정과 같은 건축자재도 눈에 띄었다.

   
▲ 왕릉으로 추정되는 능내리석실분을 비롯, 강화의 고려왕릉과 창후리 유적지에서는 청동거울, 수저, 접시 등 고려시대 공예품이 많이 발견됐다. 사진은 능내리석실분 전경

파편만 남아 있었지만, 능내리석실고분에서 발견된 은제도금장식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2.2㎝ 정도의 은제도금장식 조각은 국립전주박물관이 소장한 은제도금장도집과 문양 등이 비슷해 장식용으로 쓰인 원통형 장도집으로 추정됐다. 전주박물관의 원통형장도집은 길이 22.4㎝로 문양이 네 마디로 나뉘어졌다. 각 마디마다 인상형이나 능화문을 장식했으며 내부에 봉황무늬와 꽃무늬를 새겨넣었다. 이와 함께 뚜껑과 기벽, 바닥이 조각난 은제도금소합과 봉황문은제도금장식 등도 함께 출토됐다.
범종은 고려를 대표하는 공예의 백미다. 현재 대흥사보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탑산사종'은 역동감 넘치는 용뉴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앞을 바라보는 용이 눈길을 끌며 음통 옆에는 갈기조각이 장식돼 있다. 이 종은 제작수법이나 형태로 보아 고종 9년(1222)에 제작된 내소사 동종과 비슷하다. 탑산사 동종의 명문에 보이는 계사년은 고려왕조가 강화로 천도한 이듬해인 고종 30년(1233)을 뜻한다.

   
▲ 강화 창후리 출토 숟가락
   
▲ 강화 창후리 출토 철제가위
   
▲ 강화 창후리 출토 기와편

경남 고성군 옥천사가 소장하고 있는 '임자안양사명반자'는 고령사반자(1213)를 제작한 한중서가 그보다 39년 뒤인 1252년 만든 것이다. 반자는 절에서 대중을 불러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릴 때 두드리는 쇠북을 말한다. 종에 새겨진 고려이십삼환갑지년임자는 고종 39년인 1252년을 가리킨다.
목칠공예는 신라의 전통을 이은 나전칠기가 발달했다. 독창적인 무늬와 복채기법, 정교한 솜씨로 원으로부터 주문을 받았을 정도였다. 염직공예 역시 중국에 앞서는 기술적 실력을 갖추었으며 특히 모시포·화문저포·발이내포 등은 당시 뛰어났던 고려의 직조술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 강화 창후리 출토 은곳/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 강화 창후리 출토 청동도장

강화도에서 청자만큼 자주 발견되는 것은 기와다. 고려 초기엔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며 고구려적인 색깔이 곁들여진 기와가 제작됐다. 강화도에서 발견되는 기와는 수키와의 경우 어골(생선뼈) 무늬, 암키와는 연꽃무늬가 많다. 고려시대에는 특히 불교를 숭상하는 정책으로 절을 많이 지었고, 이것이 기와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지금도 강화 중성터나 고려궁지 등에선 어골무늬 기와조각이 종종 발견된다.
이들 기와의 표면엔 다양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수막새, 즉 수키와는 6~8개의 연꽃잎 모양과 함께 사찰의 이름, 제작연도 등이 쓰여져 있기도 하다. 또 보상화, 모란, 귀목 등이 장식돼 있는데 주로 연꽃무늬와 귀목무늬가 많은 편이다.

   
 

고려시대 암·수막새 문양 가운데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귀목무늬'라 할 수 있다. 귀목무늬는 수키와의 중심과 암키와의 좌우측 중심부에 둥근 테두리를 두르고 한두 개를 높게 돌출한 것이 특징이다. 귀신의 눈과 비슷하게 생겨 귀목무늬라 부른다. 이 문양은 반구형의 돌기와 같은 단순한 의장으로 고려 중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전국적으로 퍼졌다.
이형구 교수는 "고려시대 강화도의 공예는 기와에서부터 범종, 반자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고도 화려했다"며 "고려의 공예품은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문화적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진국기자 freebird@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