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몽 시기에도 꾸준히 제작


강화도에서 고려청자가 많이 나오는 것은 일찍부터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고려궁지, 고려 가궐지, 고려 이궁지, 선원시지, 고려고분 그리고 강화향교 부근 등 곳곳에서 고려청자가 출토되고 있습니다. 강화에선 2001년에 고려 제 21대 희종(?~1237)의 왕릉인 석릉을 비롯하여 2004년에는 고려 24대왕 원종의 비인 순경태후(?~1236)의 가릉이 발굴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고려 22대 왕 강종의 비인 원덕태후(?~1239)의 곤릉이 발굴되었고, 이어 가릉 옆 능내리에서 왕릉급의 고분을 발견했습니다. 이들 왕릉에서는 한결같이 고려청자가 출토되었는데, 모두 왕실 도자기의 품격을 갖춘 최상급 청자들이었읍니다.
 

   
 


석릉에서 출토된 청자는 대접, 접시, 잔 받침과 뚜껑, 항아리, 병 등의 잔편들이었는데, 주로 음각과 양각을 세련된 수법으로 장식하였고 상감기법도 보입니다. 고려청자의 전성기의 비색(翡色)청자의 특징을 띠는 최고급품 청자로, 13세기 전반기의 대표적인 고려청자의 전통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가릉이나 곤릉의 왕릉들에서 출토된 청자들도 청자제조 전성기 비색을 유지하고 있는 최상급의 청자들입니다. 또 능내리 고분에서 출토된 원통형 청자 향로는 이들 왕릉에서 보이는 비색청자의 여운이 감도는 표면에 용무늬를 압축 양각한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이 왕이나 왕비의 능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필자는 이때문에 앞서 13회에서 능내리 고분의 주인공을 고종의 왕비이고 원종의 모후인 안혜태후(?~1232)의 능일 것으로 추정한 바 있습니다.

   
▲ 강화읍 옥림리 강화'중성'터에서 발견되는 청자조각들. 이형구 교수가 청자조각을 손에 올린 채 설명하고 있다.

고려청자 중에 기사(己巳, 1269년)명이나 경오(庚午, 1270년)명이 상감된 매우 훌륭한 고급 상감청자 대접이나 접시가 번조(燔造)된 것이 종종 보이는 것을 보면, 원종 11년(1270)까지도 고려청자의 전성기의 상감청자가 번조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강화 대몽항쟁시기(1231~1270)에도 우수한 청자가 계속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 시기 몽고가 7차례나 무자비한 국토유린을 자행했지만 침략지역은 주로 충청 경상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전란 피해가 적은 전라 지역의 강진이나 부안에서 13세기 중엽까지도 계속 고려청자 전성기의 순청자나 상감청자 진사청자의 전통이 계승하며 청자를 번조, 서해안 해로를 통하여 강도(江都)에 공급한 것입니다.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