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Utd 새 사령탑 허정무


사람보다 개가 유명한 '진도'에 개구쟁이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장래 희망은 '장군'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유독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교사인 아버지를 쫓아 7남매가 수시로 이사를 다닐 때도 아이는 행복했다.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달리기 대표는 항상 자신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진도군 49개 초등학교에 아이는 그렇게 이름을 날렸다.
'허 정 무'. 훗날 한국 축구역사를 새로 쓰며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허정무(55)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으로 K-리그 첫 경기를 앞둔 지난 3일 저녁 허 감독을 만났다. 막 훈련을 끝내고 미처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인천유나이티드 마크가 선명한 흰색 운동복 상의를 입고 자리에 앉았다. 반가운 웃음으로 악수를 청한 허 감독은 "경기를 앞두곤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허락했다"는 말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 인천축구를 반석위에 올려놓겠다고 다짐하는 허정무 감독. 하루빨리 인천맨으로 녹아나려는'인천사랑'이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기자를 반기는 그의 모습에서 짙게 배어난다. 등뒤를 비추는 인천항의 야경이 허 감독을 포근하게 반기는 듯 밝게 빛난다. /박영권기자 pyk@itimes.co.kr


● 유소년 축구발전 설계

 

   
 

"축구요? 고마움이죠. 아마도 제 전부가 아닐까요?"
우문현답이다.
그에게 있어 축구는 고마움이다. 땅위에 두발을 딛고 하늘을 보며 숨을 쉴 수 있는 통로가 축구다. 축구를 통해 얻은 게 워낙 많아 은인과도 같다. 그래서 언젠가 반드시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유소년 축구발전을 위한 큰 설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허 감독이 말하는 큰 설계는 이렇다. 어렵고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에게 맘껏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그가 단순한 프로팀 축구 감독 역할을 넘어 유소년 축구발전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인천에서 말이다.
"이미 인천시와 많은 부분 합의를 봤습니다.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조만간 성과물이 나올 겁니다."
성과물은 유소년 축구 선수에 대한 장학재단 혹은 축구아카데미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허정무의 이름을 걸고 만들어진다.
그래서 상당한 부담이기도 하다. 하지만 잠시라도 지체할 순 없다. 과거 자신이 겪었던 아픔이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유소년 축구발전을 위한 성과물을 내놔야 한다.
허 감독은 "한국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고가 바뀌어야 한다"며 "그러나 우리 축구는 어린 선수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천 감독으로 부임한 이유 중의 하나가 새로운 시스템에서 어린 선수들을 육성해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고 강조했다.


● 드라마 같은 축구 인생

허 감독과 축구의 인연은 드라마와 같다.
집안 사정으로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방황하던 시절, 남다른 달리기 실력으로 진도군 대표로 군 대항 체육대회에 출전한 것이 축구와의 첫 만남이었다. 당시 소년 허정무의 몸놀림을 지켜보던 고 유판순(전 국가대표) 감독이 고교 입학을 조건으로 축구에 입문시킨 것이다.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무조건 축구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죠.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끝에 영등포고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전화위복일까?
악착같이 매달린 축구는 4년 만에 그를 청소년 대표로 키웠고 결국 대학(연세대) 진학과 국가대표라는 명예를 동시에 선물했다.
"참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몇 배는 더 노력했습니다."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해외에서 더욱 빛났다.
1980년 대학졸업 후 명문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입단하며 프로선수로 데뷔한 것.
"선수로서 잊을 수 없는 시기입니다. 당시 세계 최고로 꼽힌 요한 크루이프와 한 경기장에서 뛰는 것만으로 영광이었죠."
현재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명예회장 요한 크루이프는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센터포워드란 칭호를 듣고 있는 선수다.
청년 허정무가 훗날 지도자로 우뚝 서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때가 바로 해외 활동시기였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며 축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며 "선수들 개인이 창의성을 갖고 감독과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야말로 선진축구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 인천, 발전가능성 무궁한 도시

허 감독은 "내년 시즌에 인천이 포함된 수도권 더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팀을 담금질 하겠다"고 다짐한다.
K-리그 양대 라이벌인 서울과 수원, 성남 등의 수도권 더비에 2년 내에 인천이 뛰어들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보다 중요한건 인천이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앞으로 전국 5개 시민구단이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시민구단의 롤 모델이 되는 인천을 만들고 싶습니다, 인천은 어느 도시보다 발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연히 시민구단도 함께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그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배인성기자 isb@itimes.co.kr


■허정무 감독은 …

●생년월일=1955년 1월 31일 전남 진도
●학력=영도중-영등포공고-연세대
●선수 주요 경력=A매치 84경기 25골,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금메달
●K리그 지도자 경력=포항 아톰즈 감독(1993~1995년), 전남 드래곤즈 감독(1995~1998, 2005~2007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2010~)
●대표팀 지도자 경력=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 트레이너, 1994년 미국 월드컵 대표팀 코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감독
●아디다스컵 우승(1995년), FA컵 우승 3회(1997년·2006년·2007년), 동아시아연맹선수권 우승(200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감독(2009년), 남아공 월드컵 16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