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얼 역사기행을 가다


첫날과 둘째날 - 1. 정선과 태백 

매해 여름, 한국의 역사와 자연을 찾아 떠나는 '새얼역사기행'이 지난 18일 25번째 짐을 꾸렸다.

 

   
▲ 몰운대에는 약 100명이 설 수 있을 정도로 큰 반석 위에 오랜 세월 바람을 맞으며 꿋꿋이 버틴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18일~20일 3일 동안 120여명 기행단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산 좋고 물 좋다'는 강원도였다. 지난해 해남, 강진, 완도 등을 방문하며 남도의 멋과 향취를 느꼈던 기행단은 올해엔 태백과 정선, 영월을 찾아 순박한 산골 사람들의 삶을 되짚어 봤다.

오랜만의 일탈을 시샘이라도 하듯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지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강을 따라, 바람을 따라 흐르듯 유유히 움직이는 기행단의 행보는 멈출 줄 몰랐다.

그 발걸음을 함께 맞춘 인천일보가 두 차례에 걸쳐 '제25회 새얼역사기행'을 소개한다.


▲ 자연이 그린 한반도 선암마을

새얼역사기행에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다. 바로 여행을 떠나는 첫 날 어김없이 비가 온다는 것. 올해에도 이 징크스는 깨지지 않았다. 이른 아침 강원도를 향해 출발하는 기행단의 행렬위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첫 행선지에 다다를 쯤 구름 뒤에 숨어 있던 해가 고개를 내밀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최근 각종 TV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선암마을로 향했다.

선암마을은 우리나라 지도모양을 닮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다. 곡류가 심한 평창강이 주천강과 합쳐지기 전에 크게 휘돌면서 한반도를 쏙 닮은 모습을 만들어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동고서저'의 경사와 서쪽엔 넓은 모래사장, 동쪽엔 울릉도와 독도를 닮은 듯한 작은 바위까지 그대로 재현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 속의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일행은 태백시민들의 휴식터 황지연못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이 525km의 낙동강 발원지임를 알리는 '낙동강 천삼백리 예서부터 시작되다'라는 문구가 적힌 거대한 돌비석이 먼저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황지연못, 옥처럼 푸른빛을 내는 그 신비로움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진다. 태백산,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 등에서 스며들었던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는 이곳엔 '황부자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금의 연못 자리에 황 부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 노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시주를 받으려 했으나 욕심쟁이 황 부자는 쇠똥을 퍼주었다. 깜짝 놀란 며느리가 대신 잘못을 빌자 노승은 집에 큰 변고가 생길 테니 살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했다. 단, 뒤를 절대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에 놀라 며느리는 뒤를 돌아봐 그만 돌이 됐고, 집은 무너져 연못이 됐다.

황 부자는 이무기로 변해 연못 속에 살게 됐는데 1년에 1번 심술을 부려 물을 흙탕물로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황지연못은 30년 전까지 연못에 큰 나무 기둥이 여러 개 잠겨있었다, 1년에 한두 번 흙탕물이 되기도 한다.

 

   
▲ 한반도의 모양과 특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선암마을.


▲ 세계 최대의 석탄전문 박물관

태백에는 황지연못과 함께 꼭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석탄박물관이다. 1997년 문을 연 석탁박물관은 한국 석탄산업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석탄 전문 박물관이다. 총 면적 1천337㎡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들어서 있는 8개의 전시실엔 약 7천450여종의 소장품이 채워져 있다.

석탄이 주 에너지원이었던 70,80년대 한국 석탄생산의 30%를 넘게 책임졌던 태백이다. 석탄의 생성, 발견, 채굴, 개발정책 등 각종 전시자료를 둘러보면 석탄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광부들의 손때 묻은 작업도구와 생활용품들에선 그들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마침 기행단이 방문한 날엔 '일제하 징용광부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통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사진들 속엔 큐슈·카이시마·나이테 탄광 등 이름도 모르던 곳으로 끌려가 혹사당했던 우리 국민들의 슬픔이 가득 담겨 있다.

"세상에… 이 어두운 곳에 강제로 끌려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밤낮 일만했을 거 아니야"


한 중년부부가 시커먼 얼굴로 무표정하게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 광부들의 사진 앞을 떠날 줄 몰랐다.

'여가 거래요(여기가 그곳입니다)'라는 정감 있는 간판을 내건 특산물 판매장을 지나 정암사가 있는 정선으로 방향을 잡았다. 굽이굽이 도는 산길을 부지런히 오르니 해발 1천330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도로라는 만항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도로 옆으론 수십 마리의 나무새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솟대가 나들이객을 반기고 저 멀리로는 함백산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다시 어지러울 정도로 구부러진 길을 돌아내려와 국내 5대 적멸보궁의 한 곳인 정암사에 도착했다. 적멸보궁은 석가의 정골사리를 석탑에 봉안하기 때문에 법당에 부처를 모시지 않는 게 특징이다.

정암사는 적멸보궁 뒤쪽에 위치한 높은 산기슭에 수마노탑을 지어 그 안에 석가의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양식인 벽돌모양의 돌을 쌓아 만든 7층 모전석탑을 보기 위해 기행단은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신라의 큰 스님이었던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정암사 옆 계곡에선 천염기념물로 지정된 열목어도 같이 만나볼 수 있다.


▲ 누구나 시인이 돼 보는 몰운대

어딜 가든지 산과 계곡이 많은 강원도에서 정선의 몰운대는 유난히 시인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곳이다. 구름도 쉬었다 간다고 할 만큼 뛰어난 경치가 시인들의 시심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낮은 동산을 오르듯 좁은 풀길을 따라 조금 걷다보면 곧 화암8경 중 하나인 절벽을 만난다.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혼자 서 있는 500년이 넘은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잎은 다 떨어지고 위쪽 가지마저 잘려 앙상하게 말라 죽어 있는 그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잠시나마 그 풍경에 반해 시를 썼다는 많은 시인들의 감정을 느껴본다.

다음 코스는 3일 동안 가장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던 화암동굴이다. 주차장에서 내려 동굴 입구로 가기 위해 모노레일을 탔다. 5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스피커에선 정선아리랑의 한 구절이 흘러나온다.

"영감은 할멈치고, 할멈은 아(아이)치고, 아는 개치고, 개는 꼬리치고, 꼬리는 마당치고, 마당가역에 수양버들은 바람을 휘몰아치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낮잠만 자네…" 여기저기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마치 어린 시절 자장가를 불러주던 할머니의 구수한 목소리에 해학적인 가사가 더해지자 슬며시 입 꼬리가 올라간다. 이어 동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불어오는 차가운 공기로 인해 다시 한 번 미소가 지어졌다.
강원도 기념물 제33호인 이 동굴은 입구가 없어 고립돼 있던 중 금을 캐던 광부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천연 종유동굴이다. 폐광의 갱도와 연결해 동굴의 앞쪽과 뒤쪽엔 금을 주제로 한 전시와 체험학습을 할 수 있게 꾸몄다.

전시품들을 둘러보며 걷다보면 마치 절벽과도 같은 경사의 계단이 나타난다. 두려움을 감추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서 계단을 내려가면 노력에 대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 높이 15m, 너비 40m, 길이 70m나 되는 거대한 공간엔 다양하고 화려한 종유석들과 높이 8m가 넘는 대석주 등 자연의 신비가 펼쳐져 있다.
불볕더위 속에서 잠깐이나마 초겨울의 서늘함을 만끽한 뒤 정선의 옛 주거문화를 재현해 낸 민속촌 정선 아라리촌을 거쳐 구절천과 골지천, 2개의 하천이 만나 함께 어우러지는 아우라지를 끝으로 둘째 날 일정이 끝났다.


/정선=글·사진 심영주기자 yjshim@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