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열전 등서 명장으로 기록 … 전통적 무반 가문
   
 


김취려 장군은 거란·몽고 등 북방 오랑캐들과의 무수한 전쟁에서 연전연승 하면서 혁혁한 공을 세운 고려 명장입니다. 김취려 장군은 항상 북방 전선에서 국가 수호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몽고가 내침할 당시 최고 행정 수반인 문하시중의 중책을 맡아 고종을 호종하여 강화도로 천도했습니다. 몽고와 대결하는 극한 상황에서 정부를 확고히 세우는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김취려 장군의 인물이나 행적에 대해서는 익재 이제현의 '익재난고', '고려사' 열전 그리고 1909년에 진강산 서쪽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산 71번지에서 출토된 '김취려묘지석'을 통하여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김취려 장군의 일가는 전4조(祖) 후4손(孫) 전후 직계 9대가 모두 장군직에 출사했습니다. 이 같은 가족구성은 전 고려시대에 걸쳐서 드물게 보이는 것으로 전통적인 무반 집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사' 열전에는 김취려를 비롯해서 직계 5대 7인의 전(傳)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한편, 김취려 장군은 고려 고종 묘정에 배향되고, 조선조 숭의전에도 고려 명신 16위 중 한 분으로 배향되었습니다. 조선 세조조에는 고구려 을지문덕, 신라 김유신 및 고려 명신 14위와 조선 명신 2인 등 역대 위인 18위와 함께 조선 문묘에 배향되기도 했습니다. 분명 김취려 장군은 고려시기 서희, 강감찬, 윤관 장군과 견줄만한 명장이요 영웅이요 위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강화 진강산 서쪽 김취려 장군 묘역의 상계 좌우에 석수(石獸)가 놓여 있습니다. 석수는 묘침을 수호하는 벽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영적동물입니다. 그 조각수법이 매우 고졸하지만 동물의 형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조각물입니다. 오른쪽 석수는 높이 28cm이고 왼쪽의 석수는 머리 부분이 유실되어 높이 17cm만 남아 있습니다. 양도면 능내리 진강산 서록 가릉(嘉陵, 고려 원종비 순경태후릉)이나 최근에 발굴된 가릉 부근의 고려 '왕비릉'으로 추정되는 무덤의 석수 그리고 양도면 길정리 진강산 남록 석릉(碩陵, 고려 희종릉)의 석수에서 보는 비슷한 인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석조유물은 고려시기의 석조유물로 볼 수 있으므로 왕릉이나 귀족의 묘침 주위에 세우는 석수조각은 묘의 성격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선문대학교 역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