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이가 옥남 언니를 보고 조르듯이 말했다. 옥남은 맏언니답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렇찮아도 방장 언니가 내일 저녁때는 모두들 일 마치고 들어와 남새밭에 배추 묶으러 가야 된다고 했어. 서리 내리기 전에 묶어줘야 알이 실하게 배지, 늦어지면 안 된다나….』

 『금년 가을에는 식구도 늘었으니까 김장 김치도 좀 많이 담그자. 일 마치고 와서 우리가 그 야밤에 힘들게 농사 지은 무 배추들을 왜 창고지기 남자들한테 죄다 갖다 바쳐는 기야?』

 『누가 듣겠다. 기렇찮으면 소금과 항아리는 어디서 구하네?』

 복순은 먼저 들어온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 동림군 철산리 화강암채석장에 수용되어 있는 사람들은 김장용 무 배추와 그 밖의 남새들마저도 손수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된장과 간장, 그리고 기름과 소금은 관리소 측으로부터 배급을 받는데, 그런 배급품들은 벌써 몇 달째 공급이 끊어져 돌가루를 먹으면서 일을 하는 수용자들 모두가 피골이 상접해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녀는 오두막 뒤 댓돌 위에 걸터앉아 옆방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 정황을 살피다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삿자리 밑에서 매캐한 흙 냄새가 솟아올라왔다. 복남 언니의 머릿결에서는 비릿한 땀 냄새가 풍겨왔다. 종일 땀흘리며 중노동을 하고 들어와 제대로 몸을 씻지 않은 탓이리라. 그렇지만 내일부터는 자신도 옥남 언니같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복순은 머릿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잠을 청했다.

 땡땡땡 때댕 땡땡땡….

 잠시 눈을 붙였다 싶은데 바깥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복순은 깜짝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유순 방장이 윗도리를 걸치며 옥남 언니를 깨웠다. 옥남 언니는 찢어지게 하품을 해대다 벗어놓은 윗도리를 걸쳤다.

 『빨리 아침 점호 받으러 나가자.』

 복순은 옥남 언니를 따라 마당으로 나왔다. 서리가 하얗게 내려 세상 전체가 희뿌옇게 보였다. 옆방 은주 언니와 윤정 언니는 먼저 나와 서로 어깨를 두들겨주며 결리는 몸을 풀고 있었다. 복순은 아는 체를 하며 먼저 인사를 했다. 말을 할 때마다 뽀얀 입김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잠시 후 그들은 합숙소 앞 운동장으로 나갔다. 1연대 소속 수용자 1천2백여 명은 중대별로 모여 점호를 받은 뒤, 부지배인의 훈시를 들었다. 부지배인은 제5채석장에서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해 많은 사람이 다쳤다면서 수용자들은 생활준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안전에 주의하라고 했다.

 『에 또, 옥수수밭과 고구마밭, 기러구 김장용 무 배추를 심어놓은 남새밭에서 계속 농작물 도난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는데 오늘밤부터는 무장한 경비대를 배치해 도적질을 하는 반동새끼들을 모조리 잡아 감옥에 처넣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