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원은 지금껏 자신이 설명한 말을 요해할 수 있겠는가 하고 되물으며 잠시 성복순을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성복순은 뭐라고 대답을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충성의 맹세라도 하듯 힘차게 대답해야 좋을지, 아니면 지도원이 가르쳐준 대로 자신이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는 투로 조심스러움을 보여야 좋을지, 퍼뜩 판단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지도원의 눈길을 피하듯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부비서 방에 들어가 자신이 해야 할 일부터 챙겨 보았다.

 우선 부비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어지럽게 늘려 있는 옷가지부터 정리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기간 동안 부비서 방의 위치와 구조를 알기 위해 지도원을 따라 두어 번 들어가 본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다음은 더러운 옷가지와 땟구정물이 쪼르르 흐르는 수건을 깨끗이 세탁해 손닿는 곳에 걸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양말은 하루 한번씩 갈아 신을 수 있도록 아침마다 챙겨 주고, 흙먼지가 날리는 숙소와 사무실 바닥은 틈날 때마다 쓸고 닦으면 부비서도 좋아할 것 같았다. 식성도 대충 알았으니까 관리소 식당 아주머니와 토론(상의)하면서 방조(傍助)를 받으면 늘 해오던 일이니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비서 동지의 굳은 몸을 주물러 풀어주고,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기쁨조사업은 정말 어렵게 느껴졌다. 세대주도 아닌 외간 남자의 어깨나 팔다리를 매일 어떻게 주물러주는가 말이다. 기분 나쁘지 않게 부비서 동지의 아랫배와 낭심까지 주물러 줄 일을 생각하면 누가 공화국 땅에다 그따위 기쁨조사업이라는 것을 만들어 이런 관리소 안골짝까지 유포시켰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잘 못해서 자신이 채석장으로 쫓겨나는 경우를 가정해 보니까 금세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피골이 상접해 있던 언니들과 어울려 힘들게 망치질을 하던 며칠 전을 생각해 보다가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떤 시련과 고통이 닥쳐도 채석장으로 쫓겨나는 일만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팔이 빠지게 돌을 쪼아도 작업총화시간에는 개인 책임량을 못 채워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니까 자신이 지금 생명의 물줄기가 어디서 흘러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호강에 겨워 깨춤을 추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채석장으로 쫓겨나면 내 인생은 끝장이다…긴데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기쁘게 해 드리라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지도원이 해준 말을 곰곰 되씹어보니까 그냥 부비서 옆에 누워서 부비서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다가 같이 잠이나 자라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늘 부비서 동지를 기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두었다 부비서 동지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시간이 되면 기쁨조사업을 깐지게 하라는 말 같았다. 그런데 잠자리에서는 기쁨조사업을 한번도 해본 일이 없어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의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