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푸른 바다 바라보면서 푸른 잔디 위엣 자라는 우리...'로 시작되는 윤석중 작사의 창영초등학교 교가를 부르면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필자는 지난주 100회 졸업식과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올해 127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창영학교는 필자가 졸업할 때에는 4백여명이 함께 졸업하는 인천에서 대표적인 큰 학교였다. 인천의 행정구역이 확대되고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구도심부가 쇠퇴하는 과정에서 창영초등학교의 학생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반세기만에 졸업생수도 크게 감소했다.
1907년5월6일에 개교한 창영초등학교는 그동안 인천 지역사회에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뜻있는 족적을 남긴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한 명문학교로 꼽힌다. 3.1독립운동 당시 어린 학생의 입장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1965년 군사훈련 중 잘못 투척된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구한 강재구 소령은 창영 출신이다. 이밖에도 많은 학자와 정치인은 물론 인천 지역사회의 지도급인사들을 배출한 창영초등학교의 100회 졸업식은 따라서 인천역사의 중요한 장면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창영초등학교의 박만 동창회장과 심정구 명예회장이 주축이 돼 이날 제막된 창영 백년비는 창영초등학교와 우리 고장 인천의 교육사적 측면에서 뿐 아니라 명품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의 품격을 높이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한 도시의 품위와 품격은 신도시의 고층건물이나 대형 위락시설 또는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전통과 예술의 수준과 깊이에서 나온다는 것은 선진국의 명품도시들이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다. 창영초등학교 100년 기념탑이야말로 인천의 시격(市格)을 한차례 드높힌 상징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