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직업이 사람을 만든다고들 한다. 직업에 따라 사람의식도 바뀐다. 사장이라는 자리는 사장이 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일지 모르나, 사장이 된 사람들에게는 기업규모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지라도 불편하고 힘든 자리임은 분명하다.

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항상 변하고, 그 변화에 대응하면서 꿈과 야망이라는 무형을 계량화, 수치화하여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선견지명의 혜안으로 기업을 성장시켜야 하는 것이 사장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특히 중소기업 사장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차별화된 샘솟는 아이디어, 경영학적 사고와 동물적 감각, 누구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책임, 그리고 철저하게 혼자인 많은 순간들을 통해 반드시 위기를 극복하고 전진해야만 생존한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인해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한밤중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까지 잠 못 이룰 때가 많다. 30대 중반 회사설립 후 변변한 휴가 한번 다녀오지 못했다. 결혼 15년만에 처음 간 동남아여행 기간에도 가족들을 호텔에 남겨둔 채 나는 계속해서 바이어들과 상담했다. 적어도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기를 포기한 지 오래다.

한달전 큰 놈이 운동을 하다 크게 다쳐 현지에서 수술을 하지 못하고 서울로 후송되어 수술을 하였다. 수술을 하는 동안 나는 아들을 보지 못했다. 바이어와 밝은 표정으로 상담을 하고 있었다. 4시간이 되어도 깨어나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고 그제야 병원으로 갔다. 대수술을 받고 나오는 아들은 비몽사몽간에도 나를 알아보고 안심이 되는지 내손을 아프도록 힘주어 잡고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나는 내 심장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그때 들었다.

몇년 전 작은 아버님께서 별세하셨다. 새벽에 출근하여 자정에 돌아오는 생활로 청춘을 회사에 바치신 분이다. 그렇게 회사발전을 위해 노심초사 하시다가 회사를 코스닥시장에 상장시키고,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다음, 좀 여유를 가질 만하니 돌아가셨다.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불안감에 그때만큼 슬피 운적이 없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회사를 위해 온 열정을 쏟아 붓다가, 회사가 안정을 가질 때쯤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뜨는 사장이 많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경영자 10명중 7명이 고혈압과 간질환등 각종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아침마다 조찬모임에 나가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내가 겪지 못한 남의 인생과 아침밥을 소화해야 하고, 한달에 몇번은 두번 이상 저녁식사를 하여야 한다.

요즘은 연차도 있고 휴가도 있는 월급쟁이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직원들은 사장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용감하고, 배짱있고, 승부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아는 사장들은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판단이 틀릴까봐 노심초사하고,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끄고 다니고, 복사지는 반드시 이면지를 사용하는 소심쟁이이며, 말 못할 고민이 누구보다 많은 사람이다.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날은 더 밝게 웃어야 하고, 각기 다른 개성의 직원들을 이끌어 가기위해서는 인정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중소기업 사장들의 속은 알게 모르게 타 들어가 이제는 시커멓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만나는 주변의 사장들은 자기의 직업에 긍지를 느끼고, 보람이 있다고 한다. 소주 한잔 들이키면, 그들은 진정으로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토로한다. 우리 사장들이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열정이다, 열정이야 말로 우리 사장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자산이며, 다른 사람과 다른 DNA 일 것이다.
겉으로는 호방하게 웃고 진한 농담을 하지만, 우리의 속은 검게 타 들어가고 있다. 아무도 내일 또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우리 사장의 공통운명은 그것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장을 사랑해 달라고는 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만 더 이해해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