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상 思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 사는 51살 강순태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한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런데 국회에서 비정규직관련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강씨는 가뜩이나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이 회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 쫓겨난 강씨는 노동부 고용센터 등을 찾았으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하는 수없이 인력시장에 나가 한번도 해보지 못한 농사일을 하다 몸져눕기까지 했다. 강씨는 초등학교 1, 2학년과 6살 된 세 자매의 학원 수강을 중단시키는 등 생활비를 줄여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연하다며 한숨을 짓고 있다.
야당은 여권의 실업대란 경고가 과장포장됐다고 비난하고 있으나 노동부 집계 결과 산업현장에서는 강씨와 같이 계약기간이 만료된 근로자들이 매일 평균 1천여 명씩 정든 일터를 떠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비정규직 법안을 비롯해 시급히 처리해야할 법안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이런 법안들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나 다루어질 예정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미디어법 처리 무효화를 위해 의원직 총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100일 투쟁 전국대장정에 나서 길거리 정치에 몰두하고 있고, 여당인 한나라당은 9월 정기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을 다루겠다는 느긋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고통은 조만간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이 길거리 정치에 나선 것은 미디어법 투쟁을 오는 10월에 있을 재·보궐선거까지 끌고 가 선거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의원직을 사퇴하거나 사퇴 결의한 것은 야당이 여당에게 구사할 수 있는 최강의 벼랑 끝 전술이기는 하나 의원직을 잃을 우려가 없어서일 것으로 생각된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민주당의원들이 사표를 내자마자 사퇴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만 봐도 그렇다.

국회 역사 61년 동안 의원직 총사퇴나 결의는 수차례 있었으나 의원직을 잃은 건 단 한번이다. 1965년 한일협정 비준안 저지를 위해 야당인 민중당 의원 8명이 사표를 냈다가 수리됐다. 그러나 지난 1979년 박정희 정권 때 여당인 공화당이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제명하자 신민당, 통일당의 야당의원 69명이 낸 집단사퇴서는 얼마 뒤 10·26사태가 발생하면서 모두 반려됐다.

또 지난 1990년 여당인 민자당이 국회에서 쟁점법안을 무더기 강행처리하자 야당인 평민당, 민주당, 무소속의원 80명이 낸 사퇴서는 두달 뒤 박준규 국회의장이 되돌려 주었다. 이밖에 1998년 김대중 정부시절 야당인 지금의 한나라당이 총사퇴 결의를 했고 민주당 전신인 열린우리당도 여당으로는 처음으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총사퇴를 발표했으나 정식 사표를 내지 않는 엄포용이었다. 민주당은 사퇴결의로 여러 가지 딜레마를 안게 됐다.

우선 꼬박꼬박 나오는 세비를 그대로 받는다면 위장사퇴란 비판을 받게 되고 수령을 거부하자니 생계가 막연해서이기 때문이다. 한편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을 유예하려는 방침을 바꾸어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해 그나마도 9월 정기국회 회기동안 처리에도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재검토하고 있는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사용 사유제한과 정규직전환 의무비율 도입, 처우개선과 계약기간 완전 철폐, 그리고 정규직 전환기업에 사회 보험료와 법인세 감면 등의 지원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이 뒤늦게 비정규직 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긴 하나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지난 7월1일부터 발효된 비정규직법은 실업대란이 예상되는데도 그동안 유예방침 이외에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발등의 불을 끄려고 해서이다. 정권을 책임진 한나라당은 8월 중이라도 임시국회를 열어 비정규직법을 처리하고 민주당은 미디어법 처리과정의 잘잘못은 사법부 판단에 맡기고 민의의 전당에서 투쟁해주었으면 하는 게 하루하루 고통 받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