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최근 들어, 그 간 한국 영화를 두텁게 에워싸고 있던 '위기론'이 잠잠해졌다. 불난데 부채질하는 격으로, 한 동안 맹목적이다시피 그 '론'에 매달려왔던 언론 매체에서 좀처럼 위기 타령을 찾아볼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영화의 위기가 말끔히 가신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위기를 넘어 우리 영화는 사망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 선고가 이미 내려진 것일 수도 있다. 한창 잘 나갈 때도 심심치 않게 비교되곤 했던 홍콩 영화처럼. 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이제 더 이상 예의 활력을 기대할 수 없는, 효력 상실의 죽은 브랜드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 동안 우리 영화를 굳건히 지탱시켜줘 왔던 이 땅의 관객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일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런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이번 추석 연휴의 박스 오피스 기록도 그 중 하나다. 누적 관객 180만여 명을 동원하며 200만 고지를 향해 순항 중이라는 김유진 감독 정재영 안성기 허준호 한은정 주·조연의 팩션 대작 <신기전>이 개봉 첫 주에 이어 흥행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고는 하나, 주말 3일 간의 관객 수는 그다지 '위력적'이라고 할 수 없을 60만이 채 되지 않는다. 기염을 토한 영화는 외려 동명의 인기 뮤지컬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뮤지컬 드라마 <맘마미아!>다. <신기전>에 이어 2주 연속 흥행 2위를 마크하면서 160만 이상을 끌어들였단다. 그것도 <신기전>보다 80여개나 적은 516개 스크린으로. 게다가 예매율에서는 줄곧 1위를 고수 중이란다.

추석을 맞이해 첫 선을 보인 두 편의 우리 영화의 흥행 수치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사태가 심각하다. 각각 소지섭과 김수로를 앞세운 <영화는 영화다>(장훈 감독)와 <울학교 이티>(박광춘)는 박스 오피스 3, 4위에 올랐는데도, 누적 관객 수 32만 여명과 22만 여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추석 특수 등 제반 요인을 감안하면 한마디로 '참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추석 기간의 흥행 지표 외에도, 우리 영화의 국제영화제에서의 상대적 부진과 크고 작은 인재들의 영화계 대 탈주, 부쩍 더 높아져 가고 있는 TV 드라마들의 강력한 인기로 인한 영화 관객의 감소 등 상기 징후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무기력하게 "한국 영화는 죽었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아직은.

난 여전히 "위기는 기회"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믿는다. 하물며 하늘은 무너질 리 만무이지 않은가. 답은 이미 주어져 있다. <영화는 영화다>처럼, 10억 대의 저예산 영화로 4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잡는 등 '과다 출혈'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금의 부조리한 영화판 상황에서는 한국 영화의 위기 국면을 영원히 풀 수 없다. 물론 그 덕에 32만이라는 관객들을 유인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하고 또 역설해왔지만, 결국 문제는 구조적ㆍ토대적으로 해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