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이야기
마침내 아수라판 같았던 제17대 대선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대한민국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개인적 지지 여부에 상관없이 당선자에겐 축하를, 비당선자들에겐 심심한 위로를 보내련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을 겪으며, 가슴이 아리다 못해 참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유감 내지 단상을 피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영화 평론 및 강의 등을 하면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한 시민으로서, 상당수 나라에서 21세기 으뜸 화두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는 문화가 거의 아무런 중요성을 띠지 않는 대선정국이 마치 한편의 부조리극 내지 공포물처럼 다가섰기 때문이다.
나도 그쯤은 안다. 경제, 즉 의식주가, 최첨단 시대인 지금도 얼마나 중차대한 문제인줄은.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않은가. 경제 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 진입을 바라보고 있다는, 예비 선진국에서 경제가 전부인 듯한 광경이 펼쳐지는 걸 지켜보는 건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각설하고, 일개 영화 평론가로서 이 지면을 빌려 대통령 당선자에게 영화 분야와 연관된 몇 가지 바람을 전하련다. 이 바람이 물론 그에게까지 가 닿진 않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우선 영화는 그 어느 분야 못잖게 주요한 산업ㆍ오락이면서도 동시에 한 나라의 정체성ㆍ위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요 예술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에 걸맞는 접근을 해야 한다. 영화를 포함한 각종 영상물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고 국가의 주요 자산이요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정책적으로는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물등급위원회, 영상자료원 등 국내 핵심적 영화 관련 기구들의 운영 및 활동의 자율성ㆍ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예산은 지원하되 간섭은 최대한 하지 말아야 한다. 인선을 할 때도 (현실)정치적 논리나 선심성 판단에 의해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인사가 만사'라는 격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
산업ㆍ문화적으로는 그 무엇보다 투자부터 기획ㆍ제작, 배급, 상영에 이르는 '수직 통합'(Vertical Integration) 등으로 인한 독과점 문제를 기필코 풀어야 한다. 그 문제를 풀지 않고는 고질적인 한국영화 위기 해결을 위한 백약이 무효한 탓이다. 오로지 시장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기존의 주류 대중ㆍ상업ㆍ오락 영화와는 다른 접근이 요청되는 저예산ㆍ독립ㆍ예술 영화의 제작 및 배급, 상영에 대해선 별도의 지원책을 통해 실질적이며 지속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그 방안의 일환으로 그간 논의만 있었지 실행되진 못한 영화완성보증보험이나 공적 성격의 시나리오 개발펀드 제도 등을 적극 검토,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한 나라의 영화문화는 진정한 시네마테크의 존재 여부 및 그 활동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숱한 소모성 예산을 시네마테크 정착 및 활성화에 배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다. 국가의 근간인 교육과 관련해서도 영화의 산학 협동을 한층 더 강화해 교육의 현장성과 산업의 교육성을 한층 더 강화시켜야 한다. 전임 교수 확보 비율이 턱없이 낮아 총체적 부실이 빚어지고 있는 전국 영화학과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대대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