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우윳빛 뚜껑에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뚜껑을 여니 접시 바닥에 수놓아진 아름다운 무늬. 잘 익은 감과 밤, 대추를 따 담으면 가을이 성큼 마음속으로 들어오겠다.

 올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왕골 다과그릇세트. 화문석을 만드는 재료인 왕골로 무늬를 넣어가며 한땀한땀 엮어 만든 크고 작은 접시, 뚜껑달린 과자그릇 등이다.

 심사위원장이었던 곽대웅 홍익대 조형대학 교수로부터 「손잡이와 굽의 처리 등 기형(器形)의 구조가 충실하고, 엮어짠 마름새가 완벽하고, 무늬의 디자인과 색채가 세련된 역작」이라는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사람 손으로 엮어만든 것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교하고 탄탄한 이 다과그릇세트를 만든 이는 인천의 장인 유선옥씨(46·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150·☎932-9018)다.

 살림과 병행하며 밤을 낮삼아 왕골을 엮어짜기 두달여. 스스로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예쁘고 세련된 작품을 완성해낸 것이다.

 그가 만든 다과그릇을 비롯해 방석, 보석함, 폐백동고리(폐백용으로 쓰는 동글납작하게 만든 작은 용기류), 가방, 모자, 도자기모양의 화병, 사주함 등은 모두 왕골 소품이라 부르는 것들. 7월 하순에서 8월 초 사이 논에서 수확한 왕골중 굵은 대는 화문석 짜는데 쓰고, 가는 대는 이렇듯 각종 생활소품을 만드는데 쓴다.

 가는 왕골 1태(1묶음, 약 1㎏)는 1만원에서 1만2천원. 이 초록색 풀(왕골)을 사다 길이로 3조각을 내 말리는데, 물을 발라가며 3~4일 말리면 자연스럽게 탈색이 돼 전국 최고품질의 왕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왕골을 각양각색으로 염색하려면 끓는 색소물에 넣고 삶아야 한다. 색의 농도 조절 또한 쉬운 일이 아니어서 발색 정도를 보고 장인의 경지를 평가하기도 한다.

 그의 고향은 화문석의 본 고향이라는 강화 교동 읍내리다. 지금이야 강화 양우리가 화문석 주산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그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 사람 거의가 화문석짜는 일을 업으로 삼을 만큼 성했었다.

 당연히 그도 어려서부터 골(당시는 자연산 풀로 골이라 불렀다고 한다)로 무언가 짜는 일에 익숙해 있었고, 10대 중반부터 지금은 남편이 된 같은 동네 최고 기술자 이상재씨(중요무형문화재 103호 완초장) 밑에서 말 그대로 제대로 된 기술을 익히면서 실력을 다질 수 있었다.

 이후 지금까지 그는 남편과 함께 왕골을 엮으며 살아왔다. 남편의 실력이 워낙 뛰어난데다 왕골제품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현실적 문제때문에 무슨무슨 대회나 공모전 등에는 얼굴조차 내밀지 못했었다는 유선옥씨. 90년대 들어서야 크고 작은 경진대회에 출품, 상위권 입상을 휩쓸다시피 하면서 생활용품으로서의 왕골이 아닌, 당당한 공예작품으로서의 왕골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왕골제품의 생명은 무엇보다 왕골을 옹골차고 고르게 엮는 실력. 그릇의 굽이나 테두리, 손잡이 부분 엮기가 특히 어려운데 그와 비슷한 연륜을 가진 이들까지도 이런 고난도 기술을 배우기 위해 온다면 그 어려움을 짐작할 만하다.

 다음으로 뜸을 박는 일이다. 뜸을 박는다는 것은 색색으로 염색한 왕골로 무늬를 놓는 일. 흰 왕골을 물에 적셔가며 엮어가다가 무늬가 들어갈 부분에 이르면 흰 왕골 대를 염색한 왕골 조각으로 감싼 뒤 엮고 다시 빼고 넣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이 겉과 안의 이가 딱 맞게 짜맞추는 일이다. 왕골제품은 대개 거죽과 안 두겹으로 되어 있다. 좀 더 탄탄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무늬를 넣을 경우 안쪽의 지저분한 모습이 비치게 돼 이를 감싸기 위해 겉과 똑같은 크기의 안을 짜 넣는 것이다. 겉을 짜 나간 뒤 테두리가 될 부분에 삼오리(왕골 세올로 엮는 것으로 꺾을 부분에 이 방법을 쓴다)를 치고 이어서 안을 짜 나간 뒤 겉쪽으로 밀어넣으면 앞뒤 흠 하나 보이지 않는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손놀림과 노력이 필요한 까닭에 우리 왕골제품은 다소 값이 비싸다. 싼 중국제품이 물밀듯 들어온 이후부터는 더더욱 우리 것을 찾는 이들이 줄어들어 유씨 부부처럼 왕골제품을 만드는 이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 왕골제품이 좋다며 주문하려다가도 값이 맞지 않는다며 포기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왕골이나 왕골제품을 생산해내는 이들도 점점 줄고….』 그는 높은 질과 품위로 외국에 내놔도 손색없는 왕골제품의 맥이 끊어질 것을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손미경기자〉 mgson@inch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