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김청규 前 인천부마초등학교 교장
미국 LA에 사는 대학동기 덕분에 20여일간 미국 서부와 동부지역을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돌아보고 귀국하니 원적산자락의 아카시아 향이 가득하다. '가정의 달'인 5월도 이미 하순으로 접어든다.
뜬금없이 터진 '버지니아 텍' 사태로 마음 조리며 미국행 비행기를 탔는데 미국사회는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차분하다. 귀국하니 잘 나가는 모 그룹 총수가 자식 때문에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는 신문 기사가 눈에 띤다. 잘 나가던 지도급 인사들이 극성스러운 자식사랑이랄까? 과보호로 어느 날 갑자기 구설에 오르거나 불명예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차라리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참으로 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고 특히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는 것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미국 서부와 동부 그리고 캐나다 일원을 일주하면서 허버드大, MIT공대, 예일大 등 유명대학 캠퍼스를 방문하였다. 고색 찬란한 건물과 더불어 햇볕이 쏟아지는 야외 잔디 광장에서 반나(半裸)의 몸으로 독서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쳤다는 현지 가이드 '미스터 조'는 이들 대학에 수학하는 유학생들이 주로 아시아계이며 그 중 우리나라 학생들이 가장 많다고 이야기 한다.
지난 한 해에만 한국을 떠난 유학생 수가 무려 5만명에 이르며 송금되는 교육비만도 수조원에 이른다는 어느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을 접한 적이 있어 그리 놀랄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작금의 국내 교육 시스템과 비효율적인 영어교육이 개선되지 않는 한 교육 엑서더스는 당분간 지속되고 이른바 '기러기 아빠'는 양산될 것이라는 생각에 교육에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착잡하다.
교육 3불 정책을 꿀단지 모시듯 하는 현 정부의 자세도 문제지만 '망둥이가 뛰니까 빗자루도 뛴다'는 말처럼 앞 뒤 가리지 않고 자식들을 무작정 외국으로 내보내는 부모들도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캥거루 부모'와 '오렌지 족'이라는 신조어에 이어 '자식이 출가해도 방은 치우지 말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는 요즘, 이제는 우리 부모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자녀교육인지 한번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도가 넘친 자식 사랑과 보호는 오히려 자식을 의존적 인간으로 만들어 평생 자신의 허리 휘게 하고 종국에는 자식마저 망치게 하는 주요인은 아닌지….
간판 따기 위한 외형 공부보다는 자립심, 참을성,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인성 함양과 더불어 창의성 계발을 위한 영재교육이 더 절실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까지만 부모가 책임지고 그 나머지는 본인이 스스로 자립해 공부한다고 한다. 부시 3대가 수학한 '필립 아카데미'라는 명문 사립학교는 화장실 청소를 아이들이 하고 겨울에도 반바지에 맨발로 운동장을 뛰게 하는 것을 학교의 전통으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번 미국 탐방을 통해서 필자가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총기의 개인 지참을 허용하는 미국은 신변 안전의 위험을 가장 많이 느끼는 나라이다. 금번 '버지니아 텍' 사태도 따지고 보면 미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이가 총기를 손쉽게 습득한데서 발생한 사건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미국이 무질서하고 혼탁한 사회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국은 국토가 넓은 탓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자동차 천국이다. 특히 로스엔젤레스와 뉴욕 같은 대도시는 러시아워가 아님에도 10차선이 넘는 고속도로가 수시로 정체현상을 빚는 것을 보았다. 미국도 우리나라 버스 전용 차선과 같은 프리웨이(Freeway)가 있다.
이 차선은 2명이상 탑승한 차량만 달릴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고의든 실수든 간에 '나 홀로'차로 달리다가 단속이라도 되는 날이면 감당하기 어려운 범칙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규정을 어겼을 때 적당이라는 것이 용인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습관이나 행동은 단번에 고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라고 LA 친구가 털어놓는다.
다인종들로 구성된 이질적 사회에서 이런 엄한 규정과 벌칙이 없다면 오늘 날의 번영된 미국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식들이 진정 미래에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정녕 바란다면 지금처럼 기존 관행에 의한 자녀 교육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홀로서기'와 '원칙'에 충실한 미국의 자녀교육이 부럽기만 하다./김청규 前 인천부마초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