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찬 편집부국장
역시 한국 정치판은 역동적이다. 한나라당은 내파는 아니라도 내상을 입었다. 전선은 불투명해졌다. 한나라당 대세론과 보수 필승론은 성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탈당은 동기를 보면 안된다. 후 폭풍이 전선을 요동치게 만들 것이다.
천정배 의원 등 범여권 진영은 일찍부터 손 전 지사의 탈당을 요청했다. 한동안 고착화하던 한나라당 대 범여권후보라는 연말 대회전의 구도를 바꾸기 위해서이다. 이 구도 속에서 범여권 후보는 실패한 정권의 계승자라는 정치적 부채를 안게 된다. 여권은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리멤버 2002'라는 꿈을 갖게 됐다.
손 전 지사는 이미 오래전에 자신과 진대제 전 장관, 정운찬 전 총장 등이 합치면 드림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 밖을 떠돌던 '외곽지대 세력화'의 가설이 첫걸음을 뗀 것이다. 아마도 전선은 한나라당 대 비한나라당으로 움직여 갈 것이다. 이제 정치적 부채는 한나라당 몫이다.
당내에서 대선주자 줄서기로 소장파가 죽고 손 전 지사도 결국 죽었다. 한나라당의 보수적 색깔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 보수층의 두께는 30%대이다. 1997년이나 2002년 대선의 승패는 불과 수십만 표로 갈렸다. 하나의 색깔, 하나의 지역만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
특히 한국적 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극히 취약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내세우면서도 권위주의에 기대왔다. 군사정권과 반공 이데올로기도 한나라당이 갖는 부채이다. 반공과 반북은 보수할 것이 없었던 과거 보수주의자들의 '프로퍼간다' 성격이 있다.
한나라당의 연말 대선 캐치프레이즈는 심판론일 것이다. 언어와 문법이 무엇이든지 '잃어버린 10년'이 될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DJ 정권 심판론일 것이다. 비 한나라당 진영은 '기억하기 싫은 30년'이 될 것이다. 군사독재와 장기집권을 꺼낼 것이다. 산업화 세력의 정경유착과 철학빈곤도 도마 위에 올릴 것이다. 정치판은 심판 대 심판으로 격렬해 질 것이다.
그러나 전선이 요동치고 정치판이 더욱 격렬해진다해도 우리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공학은 때로는 우리를 동부리그와 서부리그로 갈라놓는다. 보수와 진보로도 나눈다. 노인과 청년으로 조차 구획한다. 그래도 우리는 균열한 적이 없다. 선거는 갈등을 촉발하지만 결과 자체가 갈등의 해소 기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닌 '이성의 바다'가 '과거 심판론'에 목숨 걸고 매달리는 정치권을 수장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성찰의 양식을 제공하는 후보자가 급부상할 수도 있다. 연말 대선 지형도는 미래지향 대 과거회귀로 또 다시 재편될 수 있다.
산업화시대에는 박정희가 있었다. 민주화시대에는 YS와 DJ가 있었다. 노무현은 포스트 민주화시대의 첫 번째 주자였다. 포스트 민주화 시대의 특징은 이정표가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혁명이 목표였다. 산업혁명, 민주혁명하면 됐다. 물론 과정은 지난했다. 이정표 없는 시대는 포퓰리즘 논란이 뜨겁다. 복지가 목표일 수 있는 현 정부는 포퓰리즘 논란 때문에 억울할 수 있다.
내면이 궁핍해진 시대이다. 포스트 민주화 시대의 두 번째 주자는 현실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확고한 대안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보여야한다. 앞으로 전선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변화할 수 있다.
지역과 세대, 이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대정신을 말하고 나라의 중심을 세워라. 이것이 손 전 지사 탈당을 보는 소회다./박흥찬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