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숙은 시어머니 손씨가 반항공훈련만 하면 심한 공포감에 말려든다는 것을 의식하며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다른 집에서는 자는 애들 깨워 옷 입혀 나오려면 아직도 한참 더 있어야 되어요.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내려가세요.

 정남숙은 인화와 함께 시어머니 곁에 붙어 서서 부축했다. 그래도 손씨는 다리가 후들거려 아파트 계단 내려가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어카든 빨리 내려가 갱도 안에 들어가야지 쌕쌔기 폭격 맞으면 살아남을 사람 없어. 전쟁 초시기 세상 모르고 꾸무적거리다 숱한 사람들이 죽었다.』

 정남숙은 미군 쌕쌔기 공포증에 걸려 있는 시어머니가 가련하게 느껴져 고개를 꺼덕였다. 그런 심정은 안 당해 보면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힘들게 아파트 계단을 내려와 마지막 층계참에서 잠시 땀을 훔쳤다.

 『순미야! 혹시 우리 순미 못 봤습네까?』

 우는 아이를 업고 내려오던 사로청위원장 안해가 울상이 된 얼굴로 물었다. 그녀는 등에다 아이를 업은 데다 머리 위에는 전쟁준비배낭을 이고 있었다.

 『못 봤는데.』

 손씨를 부축하고 있던 정남숙이 고개를 저었다. 손씨는 아이를 업은 사로청위원장 안해가 머리에다 전쟁준비배낭을 이고 있는 모습이 힘들어 보이는지 우선 배낭부터 좀 받아주라고 했다. 인화는 한쪽 어깨에 걸어놓았던 자신의 배낭을 바로 메며 사로청위원장 안해의 배낭을 받아 주었다. 사로청위원장은 머리에 이고 있는 전쟁준비배낭을 내리자 손을 놓쳐버린 딸 걱정이 되는지 다시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어린것이 엄마 손 놓쳐버리고 갈 길을 몰라 울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순미 못 찾으며 어캐 해?』

 배낭을 받아준 인화가 순미 어머니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물었다.

 『글쎄 말이다, 그 어린것이 어디 멀리 가지는 말아야 할 텐데?』

 정남숙도 걱정이 되는지 혀를 찼다. 반항공훈련 날만 되면 은혜읍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는 기분이었다. 나팔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끊어지질 않고, 그 몸서리치는 공포 분위기에 놀라 우는 아이를 업고, 끌고, 거기다 전쟁준비배낭까지 이고 갱도로 대피하러 가느라 가가호호 모두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방금 전 순미 어머니처럼 손잡고 가던 아이 손이라도 놓쳐버리는 날은 가족 전체가 십 년 감수하는 날이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공포감에 질려 기겁을 했다. 손씨는 민족해방전쟁 당시 아버지 없는 네 자식을 부둥켜 안고 전쟁의 참화와 고통을 다 이겨내느라 얼이 빠져 지금도 비행기 폭음소리와 호루라기 소리만 들려오면 자신도 모르게 숨이 가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할 때는 방향감각마저 잃고 길을 헤맸다.

 『아이구 가슴 떨려! 저 쌕쌔기 소리 좀 안 듣고 살아 갈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