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원기 경인교대 강사·교육학 박사
지난해 말 교육자치의 본질을 외면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이 개정, 공포되었으며, 이 법률에 따라 부산광역시교육감 선거가 2월 14일 사상 유례없는 극히 저조한 투표율(15.3%)로 첫 주민직선에 의해 실시되었다. 개정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의 주요 골자는 교육위원회를 시·도의회 내 상임위원회로 전환하고, 교육의원과 교육감을 주민직선으로 선출하며, 교육감의 임기는 계속 재임 3기까지 하도록 완화하는 등의 내용으로 결국 교육자치정신의 훼손이며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졸속 교육제도가 되었다.
홍보 플래카드에 눈길을 주는 시민이 드물고, 교육감 선거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시큰둥한 시민들의 반응으로 우려했던 부산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은 15%대에 머물렀고, 투표가 끝난 오후 8시 이후 주요 3사의 TV 뉴스에서는 선거결과가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이는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뉴스시간마다 보도하며 모든 프로 진행시 자막 홍보로 전국에 방송하던 것과 대조를 이뤄 국민들과 언론, 각계각층이 교육을 중히 여기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다.
지방교육자치제도는 교육행정의 지방분권을 통해서 주민의 참여의식을 높이고 각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 교육정책을 수립, 시행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교육제도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자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온갖 정치적 혼돈 속에서도 우리 교육을 지켜온 버팀목 역할을 해왔고,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며 수십년간 수정·보완되어 명실상부한 지방교육제도로 정착 단계에 이른 시기에 이와 같은 위헌적 교육자치 무력화를 위한 법제화에 개탄하게 된다.
그동안 이 법률의 개정을 놓고 1년 반 이상 국회 내외에서 공방을 거듭해오던 중 정부가 법 개정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지난해 7월 교육위원회의 도의회 통합을 시범 운영중인 바, 시행 4개월만에 서둘러 개정 법률안을 통과시킨 일은 졸렬하며 금년 말 대선과 내년에 있을 총선시기를 피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내재되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미 공론화 과정에서 각계의 긍정적 반응을 얻은 교육감과 교육의원의 주민 직선제는 개정 법률에 따른 시행에 문제가 없겠으나 교육위원회가 시·도 상임위원회로 전환되는 제도는 그 시행시기인 2010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여러가지 불합리한, 다음과 같은 미비점들을 보완해 재개정돼야 우리 실정에 맞는 '지방분권형 교육자치제도의 발전 방안'이 강구될 수 있으리라는 견해다.
첫째, 교육자치가 일반자치에 예속될 경우 국가 백년대계인 교육이 특정 정당과 정파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될 수 있으며, 비전문가들이 교육에 대한 최종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교육의 본질이 크게 훼손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2000, 3)의 "지방교육자치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야 한다(헌법 제 31조 4항)"는 판시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어떤 경우라도 지방교육재정이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지방교육자치가 발전되는데, 시·도의회에 통합될 경우 투자의 가시적 효과가 적은 교육의 특성상 다른 사업에 비해 후순위로 밀려나게 되고, 자치단체 간 재정자립도(서울 93.3%, 광주 54.1%, 전남 13.6%)의 격차가 심해 지역 간 교육투자의 불균형이 초래될 것이다.
셋째, 주민직선제에 따른 당선자 득표수의 등가성(等價性), 사회·경제적 신분 등 모순을 지적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의 경우 국회의원은 주민 25만명당 1인, 시의원은 주민 8만명당 1인인데, 교육의원은 주민 54만명당 1인이 직선에 의해 선출되며, 54:8의 비율에 의해 선출된 교육의원과 시의원이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게 되고, 사회·경제적 신분도 국회의원-시·도의원-교육의원 간 불균형으로 평등주의에 어긋난다.
개정·공포된 지방교육자치법의 위헌성, 교육의 본질 훼손, 교육투자의 불균형, 교육감·교육의원의 역할에 대한 무관심과 홍보 미흡, 독립형·절충형·통합형 교육위원회 모형 중 시·도 재정자립도 등에 의한 각 시·도 조례로 채택하는 방안, 교육자치와 일반자치의 갈등 해소, 교육의원 수의 증원 등 여러가지 모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제주특별자치도의 1~2년 시범 운영 결과 나타난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인, 교육행정가, 교육관련 단체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공청회와 설문조사 등 국민 각계각층의 폭넓은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구조가 다시 손질되어야 함에 국민들과 언론 및 입법기관, 정치인들이 공감하기를 기대한다./허원기 경인교대 강사·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