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전대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강원도 평창군 봉평에 가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관광자원화 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유진오와 함께 천재소리를 듣던 이효석은 소설적인 산문으로 소설을 쓰지 않고 시적인 서정시로 형상화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그가 쓴 작품은 수없이 많다. 그가 일제 치하 말기에 뇌막염으로 숨을 거뒀을 때는 겨우 서른 여섯이었으니 한참 일할 나이였다. 그러나 그는 고향땅에 큰 선물을 남겼다. 관광지로 개발된 봉평에는 지천으로 깔린 하얀 메밀꽃을 배경으로 물레방앗간이 자리잡고 있다.
이 소설 속에서도 물레방앗간은 에로티시즘을 상징하는 청춘남녀의 밀회장소다. 물레방아는 흘러내리는 물의 힘으로 한번 돌아가기만 하면 물의 흐름이 중단되지 않는 한 끝없이 돌아간다. 그 힘의 마력 때문일까. 알퐁스 도데도 '물레방앗간 아가씨'를 썼고 나도향도 '물레방아'를 남겼다. 이처럼 돌고 도는 물레방앗간과 같은 행태가 한국의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연출되고 있다. 노무현씨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새천년민주당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새로 만든 정당이 열린우리당이다.
우리 정당사를 살피면 수없이 많은 정당이 명멸했다. 8.15 광복 직후부터 모두 기록한다면 아마 1천여개의 정당이 지고 샜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963년 군사정권 치하에서 세계정당사상 유례가 없는 정당법이 만들어진 이후부터 치면 현재까지 115개의 정당이 있었고 현존정당은 12개다.
이들 정당의 나이는 평균 3년 2개월이다. 그것도 등록만 해놓고 선거에 참여하지 않거나 별로 활동도 하지 않는 정당들이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평균수명이 늘어났을 뿐 주요 정당들만 치면 이보다 짧을 수 있다. 정당을 가장 많이 만든 사람은 세 김씨다. 그 중에서도 김대중씨의 활약은 눈부시다. 그가 이기택과의 굳은 약속이었던 통합민주당을 깨고 새로운 당을 만든 것이 '새정치 국민회의'다. 이 모험에서 그는 성공하여 대권을 거머쥐었다. 이를 모체로 새천년 민주당이 생겼고 노무현씨를 권좌에 올렸다.
노 대통령은 자기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새천년 민주당을 소수당으로 박차버린 후 100년을 목표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으나 이제 겨우 평균수명을 채우자마자 쪽박이 깨지기 시작한다. 물레방아가 그치지 않고 돌아가는 것처럼 정당 유전(流轉)도 관성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일까. 물레방아는 흘러들어오는 물이 없으면 자동으로 멈춘다.
정당에서 사람과 돈은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과 같다. 인간사회에 사람은 쌔고 쌨지만 쓸만한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정당 활동을 하고자 하는 이는 많다.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돈이다. 우리 정당법 등은 20인 이상의 원내교섭단체만 되면 상당액의 정당지원금을 주도록 되어 있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더 많다. 법으로 정당지원금을 주는 나라는 별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정치자금의 부패예방'을 내걸고 제도화되었다. 그래도 끊임없이 정치자금의 부정은 계속된다. 차떼기 자금을 받았던 한나라당은 당사를 팔고 연수원을 기부해 그 오명을 벗었지만 열린우리당은 아직도 100억이 넘는 대선부정자금을 갚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통합신당이라는 정계개편을 시도하고 있는데 당내 중진의원들은 탈당을 거듭하여 자칫 분당의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다. 그 동안 반사이익을 얻어온 한나라당이 제1당까지 되는 셈인데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나라당도 경선과정에서 박근혜와 이명박이 언제 갈라설지 모른다는 염려가 없지 않으며 여권의 양동작전은 손학규를 빼내려고 노력 중이어서 거센 바람 앞에 놓여있는 꼴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올 12월에 있을 대선이 최대 관심사지만 개별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계개편은 바로 이 밥그릇 챙기기에 다름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상처뿐인 '통합신당'이 될 것이고 탈당파는 민주당, 국중당 등과 함께 새 삶을 도모할 것이지만 대통령 후보만은 단일화할 소지가 크다. 이에 대항할 한나라당은 경선시기와 방법 그리고 후보검증 등에 대해서 '대원칙'을 정해진 방법대로 일사분란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여 대선은 더욱 열전이 예상된다./전대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