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꿈-서영남 민들레국수집 대표, 인천사회보건복지연대 상임대표
겨울입니다. 장마철과 겨울철에는 민들레국수집을 찾는 손님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갑니다.
요즘은 서울에서 노숙을 하시는 분들이 입소문을 듣고 인천의 화수동 골목길까지 찾아오십니다. 막노동을 하시면서 쪽방에서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시던 분들도 일거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머리 긁적이면서 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매일 150명에서 300명 정도의 손님이 오십니다. 얼마 전부터는 주변의 경로식당에서 65세 이하의 손님은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오십대가 대부분인 우리 손님들이 더욱 힘들게 되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문을 열지 않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끼니를 때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국수집에 와서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차려놓고 손님들을 기다립니다. 문을 여는 시간인 열 시 전에 열 몇 분 정도가 식사를 하고 가십니다.
겨우 5평 남짓한 민들레국수집에 우리 손님들이 겨우 비집고 앉을 자리라곤 여섯 개에서 열 개 사이입니다. 손님이 너무 많이 오시면 반찬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네 분이 앉을 수 있는 조그만 식탁이 그만 반찬 만드는 자리로 변하기 때문에 손님이 많이 오시게 되면 안타깝게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열 개에서 여섯 개로 줄어버립니다.
그리고 민들레국수집이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겨우 일곱 시간뿐인데도 불구하고 150명에서 300명 정도의 손님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십니다. 믿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 손님들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밖에서 기다리면서도 줄을 서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처음 오신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이 늦게 왔는데도 먼저 식사하게 되면 속상해서 화를 내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왜 선착순으로 식사하게 하지 않느냐고 항의를 합니다.
그래도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절대로 줄의 순서에 따라서 식사를 대접해드리지 않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식사 순서는 무조건 가장 많이 굶으셔서 가장 많이 배고프신 손님부터입니다. 잘 모르고 줄을 서신 분들이 계신 경우에는 맨 뒤에 계신 분부터 식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노숙하시는 분들이나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인 약자들은 모두 세상의 줄에서 가장 맨 끝에 있는 이들입니다.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 뒤로 쳐진 이들입니다.
너무 착해서, 너무 욕심이 없어서 줄서기 경쟁에서 밀려 밥 한 그릇 맘껏 드실 수 없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곳에서 또 다시 줄을 세워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부터 식사를 하게 해 드린다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한 이들을 먼저 배려해드리면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더 배고픈 분들과 꼴찌인 분들이 먼저 식사를 하시면서 밖에서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성의껏 배려를 하는 착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맛있는 반찬은 남겨두고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좀 더 빨리 드십니다. 그러면 어느새 밖에서 기다리던 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길을 걸어야 할 때입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서영남 민들레국수집 대표, 인천사회보건복지연대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