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각균 인천시 부패척결운동본부상임공동대표
현대사회는 개방체제의 계약사회이고, 선진화를 지향하는 민주시민사회이다. 약속문화는 시민 상호간의 신뢰와 협력을 증진하는 공유가치이고, 청렴과 투명의 척도가 된다.
필자는 지난 해 12월 20일 부패방지신문 인천취재본부장의 사령을 받고서 인천광역시장 자문의 한사람으로서 그리고 새로 창립된 인천광역시 부패척결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자격으로 시장을 만나 몇가지 의논을 하려고 비서실에 접견 신청을 했다. 그러나 연말 바쁜 일정 때문에 새해 1월 16일 17시에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기다리던 접견일에 시간에 맞춰 시청으로 이동하는 중, 갑자기 시장의 공식행사관계로 접견이 하루 연기됐다는 일방적 통보를 받고 매우 당황했다. 만약 내가 이름없는 민초가 아니고 VIP였다면 이 같은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불쾌하기도 했지만, 역지사지란 차원에서 자제하면서 다음 날을 기다렸다.
예정보다 빨리 비서실에 도착해 약속시간을 무려 1시간이나 넘기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모 전직 국회의원과 현직 구청장이 예고없이 나타나 비서관을 경유하지도 않고 시장실로 직행하는 것이었다. 나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18시 18분에 내 차례가 돼 시장실에 들어가 마주 앉았으나 얘기할 시간은 5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미리 준비해간 서면보고서를 제시하고 요점만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를 하는데, 비서관이 들어와 시간이 되었다고 경고를 발하였다. 나는 서둘러 작별 인사를 하고 바로 시장실에서 물러 나왔다. 문밖에 5~6명의 국·과장들이 서류를 들고 서 있다가 앞다퉈 시장실로 결제 맡으러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현관으로 내려와서, 5분여밖에 안 남은 시간에 여러 참모들의 공무를 위한 서류결제가 제대로 되겠는가 생각하니 답답했다.
나는 지난 해, 전 서울시장(이명박)을 방문해 약 30분간 독대한 적이 있다. 이때도 접견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비서관이 들어와 시간이 다 됐다고 알려주었다. 물론 사전에 약속한 대담시간은 보장됐고 할 얘기는 다 할 수 있었다. 인천시청에서와 같이 쫓기는 처지는 아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서울시청은 모든 공무결제를 오전에 받도록 제도화돼있기 때문에 오후의 대민 접촉은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한다.
발명왕 프랑크린의 일화가 생각난다. 프랑크린은 "모든 약속은 반드시 먼저 한 것부터 지켜야 한다. 그래야 신뢰를 받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생활 철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프랑크린은 어느 날 친구에게 책을 빌리러가는 도중에 우유배달 소년과 길가에서 부딪쳐 우유가 길바닥에 쏟아지는 피해를 입혔다. 그는 당장 변상할 돈이 없어 그 소년에게 다음 날 그 시간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책을 빌려 집에 돌아오니 그 때 마침 우체부가 전보를 전했다. 백악관에서 온 전보엔 프랑크린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것이니 다음날 시간을 엄수해 도착하라는 내용이었다. 만약 약속을 안지키면 국무위원 임명이 취소된다는 것을 알고 주위에서 그를 재촉했지만, 그는 우유배달소년과의 선약이 더 중요함으로 백악관의 일방적 통보는 지킬 수 없다고 고집해 출세의 길이 좌절되고 말았던 것이다.
후일 프랑크린이 피뢰침을 발명해 유명 과학자가 되자, 대통령이 그를 다시 초청했다. 한 장관이 대통령에게 그를 소개하면서 "이 사람이 지난번 국무위원 임명을 수락하지 않은 프랑크린"이라고 하자, 대통령의 "왜 그 때 오지 않았는가"란 질문에 프랑크린은 그 당시 자기 처지을 진솔하게 답변, 감격한 대통령이 즉석에서 그를 과학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다. 프랑크린은 약속문화 실천의 본보기이다.
인천시장은 나와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연기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일전에 인천 경실련 대표직을 맡고있는 분이 부패척결운동의 시민신고센터 운용을 위한 업무협조를 위해 만나서 상의하기로 약속해 놓고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고 만나지 않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전국에서 부패인지지표(CPI)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인천광역시가 투명하고 청렴한, 열린 사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역내 민·관·군 단체 모두가 협력해 선진시민사회가 되겠다는 결의와 함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공유가치로 삼고서 상류의 탁수를 정화시키기 위한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는 만연한 부정부패와 비리 예방과 척결 및 사후관리를 위한 당국의 제도개선으로만 되지 않으며, 시민의 인간성 회복에 의한 양심과 도덕의 재무장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이제 갓 출범한 인천시 부패척결운동본부는 이 일을 위해 신세계질서에 부응하는 시대정신과 인류공영의 소명의식을 갖고 시민사회의 약속문화를 개화 결실토록 하기 위해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유각균 인천시 부패척결운동본부상임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