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식 인천대 초빙교수·경영학과
독일의 청소년문학작가, 배우, 극작가, 비평가 등 다양하게 활동하였으며,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미하엘 엔데(Michael Ende)의 소설 '모모'를 보면 시간 도둑이란 악당이 나온다. 회색 양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면서 나타나는 그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친절한 말투로 그 사람이 보내는 하루를 조목조목 따져 준다.
하루 중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쉬는 시간, 친구와의 대화 시간 등 그가 사용하는 시간 전부를 합해보니 24시간이 딱 맞아 떨어진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말한다. "당신을 위한 시간은 어디에 있느냐?"고. 그 사람은 깜짝 놀란다. 정말 24시간 중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없기 때문이다.
이 '시간 도둑'은 사람에게 보험들기를 권한다. 하루에 몇시간씩만 투자해 두면 나중에 많은 시간으로 되돌려 준다고 유혹을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시간 보험에 가입한다. 그는 하루 중 네시간을 저축하고 정말 바쁘게 움직인다. 그런데 점점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다. 친구와 대화할 시간이 없어지며 아름다운 꽃을 음미할 시간도 없어진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빨리하기 위해 안달하게 된다.
우리는 질적인 시간을 깨닫지 못하는 수가 있다. 단순히 '시간 도둑'에게 보험을 가입하는 순간, 친구와 나누는 대화, 꽃향기를 맡으며 즐기던 시간, 일을 마친 후 취하는 달콤한 휴식 등 그 아름다운 시간들을 우리는 도둑맞아 버리는 것이다.
지금 나는 나 자신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그저 24시간을 바쁘게만 보내지 않는가?
헬라어는 시간을 크로노스(kronos)와 카이로스(kairos) 두 가지로 표현한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으로 일련의 불연속적인 우연한 사건을 뜻하고, '카이로스'는 구체적인 사건의 순간, 감정을 느끼는 순간,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의미있는 순간이다. 모든 사람은 동일하게 24시간을 부여받지만, 시간을 그 이상의 질적인 가치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소모적으로 사용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제 병술년(丙戌年) 한 해를 보내고, 정해년(丁亥年) 새 아침이 밝았다. 600년만에 찾아오는 황금돼지의 해를 맞아 저마다의 꿈과 희망을 싣고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타종소리와 함께, 동해안 정동진의 해돋이와 함께, 부산 해운대의 바다축제와 함께 각자의 소원을 그려본다. 올해 이루어야할 꿈과 소망은 무엇인가? 저마다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에 안간힘을 다 기울이고 있다.
인생의 참 의미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자에게 있다. 철새가 양지를 쫓아가듯 간에가 붙고, 쓸개에 붙으며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사람은 '카이로스'적인 시간의 참의미를 모른다. 그들은 살아있는 정신들이 소멸되고 단지 기회주의적이고 단기 업적주의적인 '크로노스'적인 삶을 살고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무엇이 옳고 그르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과 대항해야하며, 무엇을 위해 나의 정렬과 투혼을 불사를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한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좀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한정된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시간 도둑'에게 정말 소중한 우리의 질적인 시간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 이 치열한 시간과의 투쟁에서 일분 일초라도 아끼며, 삶의 보람의 의미를 되씹으며 살아가는 자만이 승리할뿐 아니라 성취와 보람과 행복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철저히 그리고 완벽하게 사용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 때, 나의 삶은 보다 충실하고 가치있게 될 것이다. 어떻게 시간을 쓸 것인가? 내가 보내는 일상생활의 시간중 책읽는 시간, 아이디어를 내고 보다 창의적인 일에 사용하는 시간, TV보는 시간, 신문이나 잡지를 샅샅이 읽는 시간, 아무 열매 없이 잡담이나 험담하는 시간, 남을 원망하며 시기하는 시간 등에서 무엇이 '카이로스'적인 시간이며 무엇이 '크로노스'적인 '시간도둑'인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쉬면서 재충전하는 시간, 이웃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시간, 삶을 정돈하고 연구하는 시간, 자기 사업이나 전문분야에 골몰하는 시간, 기도하고 감사하는 시간 등 '카이로스적'인 시간에 보다 더 여유를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600년만에 한번 온다는 황금돼지의 해에 우리 모두의 시간이 '카이로스'적인 시간의 활용으로 평소의 시간활용보다 600배 더 가치있게 시간을 보내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김의식 인천대 초빙교수·경영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