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김경룡 논설고문
'나도밤나무'라는 낙엽 활엽수가 있다. 잎은 밤나무 비슷하면서도 열매가 실하지 못한 무늬뿐인 '밤나무'다. 뜬금없는 '밤나무타령'인가 싶겠으나 평소 '동북아시아시대 중심도시'를 표방해온 인천인지라 행여나 싶어 뚜껑 열어보면 '나도밤나무' 닮아 알맹이가 보이지 않으니…. 입지를 가려 물류·무역·생산거점(hub)으로 키워 국제경쟁력을 높이고자 한 당초의 정부착상은 옳았지만 이어지는 실천적 로드맵이 따르지 않아 여태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최근 인천경제자유구역 발전을 위한 '시민과의 대화'에서 내외 관계인사가 밝힌 의견은 한결같이 투자의욕을 북돋워 주기에 인센티브(誘因)정책이 인색하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에 대한 매력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정작 친 시장적 환경을 이끌어 내기에는 제반규제가 커 외국투자가는 물론 국내기업조차 경원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올해(1~9월) 외국인투자는 같은 기간보다 2% 준데 비해 국내기업 해외투자규모가 지난해 보다 87% 늘어난 사실만으로도 각종규제의 영향력을 가늠하기에 어렵지 않다. 바꿔 말해 국내기업 진출여건이 안정돼야 해외투자를 유발하거늘 정부가 이어 현실성 없는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수도권규제에 매달려 있어 세밑 시장이 스산하다.
오죽하면 인천상공회의소가 반 기업정서가 강한 정부의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에 대해 실효성이 미흡하다며 재검토를 촉구했겠는가. 같은 맥락에서 인천항발전협의회 또한 인천항 활성화를 위한 민간차원의 홍보설명회를 연 것도 정부시책을 불신하는 현장의 기류이다.
한때나마 인천은 허브공항개설을 계기로 미구에 육·해·공을 아우르는 동북아시아 중심 축으로서의 위상이 높아지리라는 기대에서 나름의 긍지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동북아시대'가 황해연안국가와의 상호협력이라는 인식에서 인천이 지정학적으로 가장 유력한 입지로 자처해온 종래의 기대는 주변의 경쟁역학구조가 이를 허락지 않는다.
정치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아세안국가 및 역외국(美·日 등)까지 아우른 교류를 염두하면 보다 광역적 '환태평양시대'와 마주치니 여기에 치열한 경쟁이 나설 것은 불문가지이다.
부산항은 정부의 배려에 힘입어 항세(港勢)를 이어 키우는데 반해 인천항만은 그나마 교역물량마저 포화상태인데도 이를 대체할 지원대책이 규제에 묶여 수요와 공급이 따로 논다. 듣자니 평택항은 이미 중국시장을 겨냥한 부두 접안시설 건설을 위한 소요예산이 반영되었다는데 아직도 인천에 대한 정부의 홀대는 현재진행형이라 이해하기 당혹스럽다는 것이다.
불행한 예단일지 모르나 이대로 가다가는 동북아시대의 중심은 인천은 물론 부산 등지가 아니라 중국이 따 놓은 당상이다. 올 성장률이 10년이래 최고를 기록한 중국은 경제강국 반열에 섰는데 그가 바로 일의대수(一衣帶水)를 사이에 둔 이웃이 아닌가.
참고로 일본은 1993년을 기해 장기간 침체국면이던 거품경제에서 벗어 났고 그 해를 상징하는 유행어 대상(大賞)에 '규제완화'가 뽑혔다. 당시 호소카와(細川) 내각의 국면돌파전략은 이랬다.
첫째, 경제성장 제로시대에 접어듦에 따라 기간산업의 새로운 활로개척이 화급하고 둘째, 국가재정만으로는 효험이 제약됨으로 변화하는 미국시장을 공략하기에 종래의 전략으로선 어렵다는 데서 얻은 답이 '규제완화'다. 이처럼 '전가의 보도'를 서슴없이 파기한 조기판단이 바로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활력소다.
오늘 날 내외의 시각은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 잠재력을 지녔다"고 본다. 인천항을 기점으로 차이나 횡단철도(TCR)와 시베리안 횡단철도(TSR)를 통해 유럽까지 연결하는 열차페리구상도 떠오르거니와 이 경우 그 대상일 수도 있다. 다만 "구술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아무리 인천의 잠재력이 매력적이어도 이를 보는 위정자의 시각이 온전치 않으면 그림의 떡일 수밖에….
모름지기 현 정부는 경제성장동력을 이끌어 낼 임기 마지막 작품으로써 수요있는 인천에 공급이 잇따를 명실공히 '동북아 허브'조성에 거듭 관련규제의 철폐를 당부해 마지 않는다./김경룡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