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칼럼 말미에 난 이번 열두 번째 콜카타영화제를 통해, 영화제 일반에 대해서는 물론 인도 영화와 한국 영화에 대해, 그리고 전수일 감독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금 사고하게끔 하는 소중한 계기를 제공받았다고 썼다. 지면 관계 상 그 계기들을 여기서 다 다룰 순 없다. 그저 인도가 세계 최다 영화 제작국으로서 2004년 한 해만 무려 934편이 개봉되어 36억 명에 달하는 관객들을 불러 모았으며, 19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 평균 관객 수가 약 30억여 명으로 전 세계 관객 점유율 중 무려 43%를 차지한다는 정도의 정보만 밝히는데 그치련다.
영화제 내내 날 사로잡았던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는 대체 어떤 이유에서 그들은, 부산 경성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줄곧 부산에서 영화 작업을 해온, 변방의 저예산 독립 영화감독의 회고전을 개최하는 파격적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실천에 옮겼느냐는 것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내 안에 부는 바람'(1997)에서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2005)에 이르는 총 4편의, 전수일 감독의 작품 중 단 한편이라도 본 분이 있는지? 아마, 없을 거다. 설사 있더라도 그 수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거다. 그의 영화들 중 그 어느 것도 상업적 배급망을 타고 선보인 예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해 부산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최근작 '개와 늑대...'는 아직 개봉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언제 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름대로 시도는 되고 있지만 말이다.
아니 그 이름이나마 인지하고 있는 이들도 거의 없을 듯. 가령, 인하대 내 교양 수업 '영화의 이해'를 수강하는 1백 수십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본즉, 그 이름을 알고 있는 학생은 단 한명도 없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결국 그는 이 땅에서는 부재하고 잊혀진 감독이요 존재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는 물론 있다. 단적으로 그의 영화들은 보기 쉽지 않다. 그 속내가 난해해선 아니다. 스타일적으로 워낙 비주류 화법으로 일관해서다. 거기에선 대중 상업 영화의 그 흔한 오락적 가치들이 최대한 억압ㆍ배제된다. 당연히 스타는 없다. 저예산이란 물질적 조건 탓이기도 하지만, 감독의 기질 상 스타에 의해 자신의 영화적 진정성 및 메시지가 변질ㆍ퇴색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재현('내 안에 부는 바람')이나 설경구('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등처럼, 가끔은 훗날 스타덤에 등극하게 될 미래의 스타가 신인다운 풋풋한 열연으로 강한 인상을 전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름 아닌 그 지독한 독립성ㆍ작가성이 콜카타영화제가 전수일을 초청하고 지지하는 결정적 이유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 영화제는 (재)발견과 환기, 성원의 장으로서 영화제의 기능을 100%로 수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감사하게도. 결국 중요한 건 영화제 숫자가 아니라 그 정체성이요 방향성인 셈이다. /전찬일(영화평론가/숙명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