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내인천상수도남부수도사업소 팀장
조선 후기의 풍자적인 인물 봉이 김선달. 평양 출신 재사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일화로 유명하다. 그의 일화를 회고하며 잠시나마 미소를 지어볼 만 하다.
김선달이 대동강가 나루터에서 사대부집에 물을 길어다 주는 물장수를 만났을 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물장수를 데리고 주막에 가서 얼큰하게 한잔을 사면서 "내일부터 물을 지고 갈때마다 내게 한 닢씩 던져주게나" 하면서 동전 몇 닢씩을 물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 의관을 정제하고 평양성 동문을 지나는 길목에서 의젓하게 앉아서 물장수들이 던져주는 엽전을 헛기침을 하면서 점잖게 받고 있었다.
이 광경을 사람들이 수군대며 살피고 있었다. 이때 옆전을 내지 못한 물장수가 선달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이를 본 한양인들은 대동강물이 선달 것인데 물루장수들이 물값을 내지 못하게 되자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여 내일부터 밀린물값까지 다 지불하여야 한다고 엽전 준비에 야단이었다. 이를 본 한양 상인들은 선달을 주막으로 모시고 술을 대접하며 흥정을 시작한다.
선달은 "조상대대로 내려온 것이므로 조상님께 면목이 없어 못 팔겠다"고 버티면서 이를 물려줄 자식이 없음을 한탄까지 한다. 한양상인들은 집요하게 흥정을 하며 처음 제시금액은 1천냥이었다. 이후 2천냥에서 4천냥으로 올라 낙찰되었다. 당시 황소 60마리를 살 수 있는 돈 이었다.
봉이 김 선달은 재치와 관용으로 양반에겐 굴욕을, 평민과 서민에겐 통쾌함을 선사함으로써 그 시대에 서민적 우상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 당시만해도 대동강의 물은 사람이 그냥 마실 정도로 맑고 깨끗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도 대동강 물을 팔 수 있을 정도로 맑은지는 알수 없지만 사람과 물과는 불과분의 관계인 것만은 사실이고 보면, 건강을 중요시하는 현세에 사는 사람들이 물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은 당연지사인 것이다.
물에 관한 에피소드도 수없이 많다 월남전에서 수통의 물이 떨어져 타는 목을 축이기 위해 수통에 소변을 받아 놨다가 마시기도 하고. 시뻘건 늪의 물을 수통에 넣어 정수제 한 알을 넣고 흔들어 마시는가 하면, 어떤이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 미네날이 풍부한 물을 마시기 위해서 제주도에서 공수해온 물을 먹기도 하고, 심지어는 외국에서 수입된 물을 마신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물들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다고는 단정할 수는 없다. 사람은 체질로 다양해 섭취한 음식도 그 체질에 따라 효력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월남전 참전이후 고엽제에 의한 위장병으로 삶의 일부를 할애하며 물에 대한 지식을 터득하면서 나름대로 좋은 물을 마시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다.
하루 종일 차를 몰아 강원도 깊은 산골짝까지 물을 길러 가기도하고, 가끔 계양산 약수터을 찾기도 하였다. 그러나 위장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해주지는 못하였다.
필자도 수돗물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으나 상수도에 몸담고부터는 상수도를 이해하게 되었고 직접 체험을 통해서 마셔도 이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장병에 차도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수돗물을 펫트병에 담아 십여분동안 상온에 두었다가 냉장고에 넣어두고 공복에 마시면 그 물맛은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정도이다.
고도의 정수기술과 오래된 수도관을 교체하여 질높은 수돗물을 가정에 공급하고 있다. 오늘도 필자의 책상위의 물잔에는 수돗물이 담겨져 있다.
아직 일부 시민들은 막연한 수돗물 불신으로 생수로서의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직접 체험해 본 사람만이 그 맛과 효과에 만족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