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동이도 아니고 6·25전쟁도 겪지 못한 필자는 KBS의 드라마, '서울, 1945' 덕분에 동족상잔의 비극, 즉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 때문에 남북이 서로를 향한 형제애를 희생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목격하였다. 인간과 민족에 대한 이상향적 이데올로기를 구현하고자 사랑하는 연인을 항상 떠나보내야만 하던 주인공이 다른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남측 친구를 위해 몸으로 총알을 막아내며 죽어가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종영 마지막 장면에서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이 주인공의 귀환을 기다리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6·25때 헤어진 부인과 남편이 오늘날 50여년을 기다려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만나는 실재 역사의 주인공들의 50여년 전 모습이었음을 새로운 감동으로 느꼈다. 이렇듯 역사극은 현대인들에게 시공간상으로 경험할 수 없었던 과거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창문을 내어준다. 필자는 최근 고구려 관련 역사극의 부활로 6·25보다 더 먼 과거의 선조들의 삶을 바라보는 창문을 여러 군데 갖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역사극이 사실(fact)과 픽션(fiction, 허구)을 결합한 팩션(faction)의 장르로서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상상력에 의존하여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비판에 귀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역사극의 부활에 감사하고 싶은 것은 이 드라마 덕분에 나중에 학문적 자료 혹은 페미니즘 관련 학회에서 접하거나 자칫 접할 수도 없었을 소서노여제에 대한 역사절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천일보 8월21일자 '월요광장' 칼럼에서 김성숙 인천시의원님은 현재의 '주몽' 드라마처럼 소서노가 젊은 여인이 아니라 8살 연상의 여인이었으며 주몽의 아들 유리에게 왕권이 계승될 것을 우려해 자기의 자식 비류, 온조라는 두 아들을 데리고 인천지역에 남하해 고대 백제왕국을 건립했다고 지적하였다. 이런 사실외에도 김의원의 칼럼은 작년 '제9회 세계 여성학 대회'의 행사로 충북 어느 공원에서 '소서노여제의 석상 개막식'이 세계인들의 참여 속에서 거행됐음을 알려주었다.
이 칼럼은 주몽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전인 2005년에 역사 속의 여걸인 소서노가 현대에 세계 여성학관련 사람들과 우리 동시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출현하였음을 말해준다. 이런 소중한 과거와 현대의 공존 사실은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의 인식에서만 머무르게 된다. 현대 드라마의 역할은 이런 전문가들에게만 허락된 역사적 사실과 당대의 문화를 우리 대중의 인식 속으로 가까이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함에 있어서 때로는 역사적 사실이 우리에게 더 친숙한 구조로, 주몽의 소서노의 경우 낭만적 시각에서 젊은 처녀로 다가올 수 있다. 요새 주몽 드라마를 보면서 아름다운 처녀 소서노 얼굴 위에 남편(우태)과 사별한 과부 소서노여제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더 풍부하게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한편으로 드라마 작가는 무조건 역사를 달콤한 당의정 형태로 대중의 입맛에 맞게 재현하기 보다 사실에 입각해 두 아들을 둔 과부 소서노와 주몽의 사랑을 배경으로 한 고구려 건국을 재현하였으면 더 현대적이고 풍부한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일단 그런 요구에 앞서 먼저 이런 사극의 활성화에 감사를 표하고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더 전문가적 시각에 기초하여 많은 역사 드라마를 만들어주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최근 중국 동북공정의 비이성적 몸짓은 정치적 야망에 입각한 상상력의 역사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섬뜩한 느낌을 준다. 이는 중국의 최근의 작태가 사실과 반대되게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과대망상 환자의 뒤틀려진 소망이 만드는 환청과 환각적 몸짓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위로는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부터 아래로는 우리의 이상적 꿈의 섬인 이어도까지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듯하다. 이런 중국의 몸짓은 필자로 하여금 과거가 성큼 현재의 공간으로 넘어선 느낌을 준다.
과거 일본의 군국적 식민침략 그리고 호시탐탐 국경 확장을 꿈꾸는 중국에 휩싸여 두려움으로 졸아진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가늠할 것 같다. 이런 차제에 다각적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조명해주는 역사극의 부활이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위용은 물론 과거의 실수를 통해 배움의 계기를 갖고 다시금 열강의 군화에 짓밟히는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상과 용기를 주는 촉매의 역할을 해주기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