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조정문제가 매듭을 짓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오늘날 기형적 수사구조의 모태가 됐던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전후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 국민이 경찰에 대해 느끼고 있는 불신의 씨앗은 최초로 일제 식민치하의 경찰활동 속에서 뿌려졌다고 볼 수 있겠다. 이 당시 경찰력 행사의 목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확보가 아니라 오로지 일제 식민지배체제의 공고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독립투쟁을 하던 애국지사들을 체포하고 탄압하는데 약 3천명에 달하는 한국인 경찰이 동원돼 활동함으로써 조상들에게 큰 불신감과 두려움을 심어주게 되었던 것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 미 군정기를 거쳐 출범한 우리나라 건국경찰은 공산주의와의 투쟁이라는 기치아래 일제 식민통치 시절에 근무했던 경찰을 상당수 다시 채용함으로써 일제경찰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당시 미군정청의 경찰책임자였던 '윌리엄 맥린'은 경위이상 간부 1천157명중 82%에 해당하는 949명이 일제치하에서 근무하던 경찰관이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설상가상으로 하급 경찰관 다수가 일제치하의 경찰경력을 인정받아 간부로 채용되었는가 하면 이들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각종 선거에 개입하는 등 법치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태도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찰 과오의 여파는 직접적으로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경찰에게 수사권을 줄 것이냐의 문제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 당시 엄상섭 입법위원 등 책임자의 발언록을 보면 경찰에게 수사권을 주고 검사에게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이 법리적으로나 이론상으로 옳다고 보면서도 당시 상황에서는 경찰파쇼가 우려된다면서 오늘날 견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정도의 기형적 수사권한을 검찰에게 주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 제195조와 제196조 규정의 입법이 추진됐던 것이다. 결국 이같은 불합리한 기형적 수사구조 탄생의 책임은 지난 날 국민을 위해 겸손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지못했던 경찰에게 일응 1차적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올해로 한국경찰은 창설 61주년을 맞는다. 현재의 기형적 수사구조를 결정졌던 대한민국 최초의 형사소송법도 법 제정 이후 52년이라는 세월이 경과했다. 이 장구한 세월동안 이 나라를 둘러싼 정치ㆍ사회ㆍ경제적 환경이 얼마나 많이 변화해 왔고 이에 따라 경찰조직도 얼마만큼 새로워져 왔는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변화되지 않고있는 것이 있다면 경찰을 수사보조자로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195조, 제196조다.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수사구조를 개편해 경찰을 성숙한 수사기관으로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가장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조직은 아이러니하게도 성숙한 수사기관임을 자처하고 있는 검찰조직이다. 경찰이 수사권을 갖고 수사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면서 탁월한 수사를 하게 되면 국민에게도 유리할 뿐만 아니라, 검찰이 이중수사를 하는 불편도 많이 줄어들게 되고, 검사도 본연의 공소유지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모두 합리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에게 수사주체로서의 법적 지위부여를 검찰이 거부하고 있는 것은 견제불가능한 검찰의 수사권력이 침해당하는 데에 따른 방어전략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수사기관이 범인체포와 증거수집, 그리고 이를 통한 처벌을 수사의 최종적 목적으로 삼는 이른바 권위주의적 수사행태를 갖고 있을수록 무고한 피의자를 벌하거나 무리한 수사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겠지만, 궁극적으로 범죄피해자를 보호하고 그 피해를 회복시켜 준다는 차원에서 사안의 진상을 객관적으로 규명해 나가는 이른바, 피해자보호적 수사행태를 견지한다면 수사활동이라는 것은 범죄피해를 당한 대다수의 선한 시민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수 있는 봉사권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봉사권력으로서의 수사권은 수사기관의 권위주의와 편견이 배제된 '중립적 사실조사의 권한'이며, '객관적으로 과거사실을 재현하는 기술'로서의 수사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경찰도 검찰도 국민을 제대로 섬기기 위해 낮아져야 하고 견제되어져야 하고 투명해져야 한다. 국민의 인권과 편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새로운 형사 사법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높아진 수사권력을 겸손히 낮추는 국민의 입법적 결단이 필요하다. 수사기관간에 균형적이고 상호견제가 가능한 형태의 민주적 수사구조를 마련하게 되면 경찰과 검찰을 비롯한 모든 수사기관의 수사관(搜査觀)도 새롭게 바뀌어 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