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제 일어나서 샤워를 하시오.』

 소대장은 앰뷸런스가 도착하기 전에 옷이라도 갈아 입혀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인구는 「샤워」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었다. 소대장은 인구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걸려 다시 의사를 물었다.

 『몸에 묻은 흙이라도 좀 씻어야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겠는데 아직도

몸이 많이 불편합니까?』

 『아닙네다.』

 인구는 그때서야 소대장의 의도를 파악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대장이 말했다.

 『이일병, 이 귀순자 샤워장까지 안내해 줘. 그리고 냉수와 온수 밸브

사용하는 법도 가르쳐 줘. 처음 사용하는 밸브라 당황할지도 모르니까….』

 이일병은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며 인구를 데리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화장실과 맞붙어 있는 샤워장은 내벽이 흰 타일로 마감되어

있어 깨끗했고, 은은하게 화장비누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이 밸브를 틀면 따뜻한 물이 나옵니다. 만약 물이 뜨거우면 이 냉수

밸브를 틀어 물의 온도를 조절하세요. 샤워 후에는 이 수건으로 몸을 닦은

후 이 속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이일병은 자신이 이곳으로 전입되어 왔을 때 선임자들이 가르쳐 준

것처럼 샤워장 이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인구는 말없이 눈만

끔벅거리고 있다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아, 샤워 후 양치질을 하고 싶으면 이 칫솔을 쓰세요. 이건 소금이고

이쪽에 있는 것은 치약입니다. 취향대로 쓰세요.』

 인구는 고맙다는 듯 또 고개를 꾸벅했다.

 『그럼 나가서 있을 테니까 샤워 마치고 나오세요. 뭐 궁금한 것이

있습니까?』

 이일병이 다시 물었으나 인구는 대답이 없었다. 그냥 고개만 저으며

말없이 서 있었다. 이일병은 자기가 보는 앞에서 옷을 벗기가 뭣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인구는 이일병이 밖으로 나간 뒤에도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누군가가 비밀스럽게 숨어서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감시하고 있는

것처럼 불안해서 몸을 움직이기조차 싫었던 것이다. 그는 불안한 표정으로

샤워실 벽 위에 조그맣게 뚫려 있는 공기창을 지켜보다 살금살금 샤워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금 전 이일병이 시범을 보여주었을 때처럼

샤워기 밸브를 틀어보았다. 쏴아 하는 물소리와 함께 생각지도 않던

뜨거운 물이 머리 위에서 분수처럼 쏟아졌다.

 『앗 뜨거!』

 기겁하듯 소리를 내지르며 인구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눈앞이 아뜩해지며 얼굴이 따끔따끔했다. 머리 꼭대기에서는 뿌연

수증기와 함께 뜨거운 물이 계속 쏟아졌다.

 인구는 사색이 된 얼굴로 샤워장 바닥을 뱅뱅 돌다 한 옆으로

물러앉았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뛰며 얼굴에 진땀이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