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이진영씨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고만 살아 왔기 때문에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원 봉사활동을) 시작했죠.”
 월남파병용사인 이진영(58·장애인 2급) 씨는 지난 5년전부터 한 달에 두 세 번씩 인천시 서구에 위치한 인정재활원을 찾는다. 월남전에서 입은 상처로 자신도 장애인 처지지만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지난 2001년부터 이 곳을 찾아 자원봉사를 펼쳐오고 있다.
 이씨가 주로 하는 일은 장애인들의 외출을 돕거나 자신이 받은 위문품을 재활원에 전달하고, 후원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정기적인 나들이 때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장애인들 안내, 부축, 가방챙기기 등 온갖 일들을 도맡아 한다.
 평소에는 직장에서 인정재활원 후원자를 모집한다. 이씨가 지금까지 모집한 인정재활원 CMS 회원만 50여 명. 이씨는 직장인 인천축산물도매시장에선 인정재활원 ‘호객꾼’으로도 통할 정도다.
 “국가유공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을 하죠. 자식들도 그렇게 가르칩니다. 좀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것이야 말로 정말 사회와 국가를 위하는 일 아니겠어요.”
 이씨는 현재 인천시 남구 학익동에 위치한 이른바 인천중상이용사촌에서 생활한다. 인정재활원 자원봉사 활동 뿐만 아니라 이 곳에서 6·25 참전용사와 미망인의 심부름꾼 역할도 한다. 이 곳에 모여 사는 6·25 참전용사 8명은 모두 1급장애인이다. 벌써 80대 노인이 된 이들에게는 이 씨가 자식이자, 전우다. 아침이면 6·25참전 용사 각 가정을 방문해 문안 인사를 하거나 마을회관에 모두 모여 얼굴을 본 뒤 하루를 시작한다.
 이 씨가 직장에서 모은 수입의 일부는 이들에게 쓰여진다. 마을회관 수리비나 목욕탕 설치비 등 6·25 참전 용사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돕는다. 일부는 이들의 병원비로도 쓰여진다.
 그는 “6·25전 때 전장에서 두팔을 잃고, 두 눈을 잃은 유공자들이 벌써 80대 노인이 돼 버렸어요. 혼자서 생활하지 못하는 연로한 노인들이 수두룩 하죠. 이들을 위해 심부름꾼이 된지 10년이 됐는데 아직도 진정한 심부름꾼이 되기엔 멀었죠.”라며 겸손해 한다.
 이 씨는 요즘 보훈 문화가 경시되고 있는 사회풍조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이 씨는 “호국보훈이라는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잊혀진지 오래”라며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 봉사한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다. 호국보훈을 잊는 것은 국가의 존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이승호기자 blog.itimes.co.kr/jayoo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