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은 부부관계에 있어서 그 아내의 지위를 삼단계로 나뉘어 말 한 적이 있다. 젊었을 때의 아내는 사랑하는 연인과 같고, 그 다음단계인 중년의 아내는 먼 길을 같이 가는 동반자와 같고, 마지막 노년에 이른 단계에의 아내는 간호사와 같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확대해나가면 사회적 아내와 사회적 간호사로 생각 할 수 있고, 여자는 직업과 관계없이 작고 크고 깊고 얕은 차이는 있을망정 모두 어느만큼 인생의 간호사적 성격을 간직하고 있다 할 것이다. 女必從夫라는 말이나, 내조자라는 말의 뜻 속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은근히 의지하는 속샘이 깔려있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이렇게 생각 할 때 베이컨의 말과 우리의 속담과 상반되는 것 같지만, 「그 남편을 알려면 그 아내를 보라」는 말과 함께 그 뜻은 상통하고 있다 하겠다. 아무리 굳건한 남자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여자에게 의지하게 마련이다. 동서고금의 영웅호걸도 마음을 열어놓고 보면 마찬가지다. 여자는 약한 존재이지만 어머니가 되었을 땐 무척 강해진다. 간호사가 정신적으로 강인한 것은 자선과 인정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머니가 사랑을 바탕으로 강한 힘을 발산하는 것 같은 이치라고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상징으로 곧 잘 나이팅겔을  들거니와 그가 1800년대 병원의 개혁자로서, 군대 간호사업의 선구자로서, 크림전쟁 당시에는 페스트에 도전 한 전장의 천사로서, 전후에는 간호사 양성의 어머니로서 위대한 인생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실상은 그가 간호사라는 직책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간호사가 많다. 내가 병상에서 격은 간호사들은 모두 마음씨 고운 백의의 천사들이었다. 간호사들이 입고 있는 가운의 흰빛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응석을 부리는 중년의 환자를 어린애 얼리듯 한다. 그녀들의 얘기 속에는 정이 실려있다. 주사를 맞아도 미소 짓는 얼굴이면 덜 아프다. 주사를 놓아주는 간호사에게 아주 미인이라고 했더니 얼굴을 씰룩했지만 돌아서는 얼굴에 미소가 서리는 것을 보면 싫지도 않는 것 같다.
1970년대 서독에서 간호활동을 했던 우리나라 간호사들이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친절하고 다정하고 간호기술도 뛰어나 독일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서독 젊은이들로부터 신부 감으로도 높은 인기를 차지하기도 했다. 간호사도 가끔 아파서 간호를 받는 수가 있고 의사가 앓아누워 있으면 야릇하고 이상 해 보인다. 이와는 좀 다른 얘기지만 어느 외국에서는 교도소장이 무슨 사건으로 감방에 들어 앉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것은 정말 진풍경인 것이다. 의사나 간호사가 병상에 누워본다는 것은 병상심리를 터득한다는 의미에서 필요한 일일 것이다. 간호사가 의사의 치료를 받고 의사가 간호사의 간호를 받아보는 것도 흥미 있는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말하자면 역지사지로 입장을 바꾸어 겪어보는데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간호사와 환자 사이에 청순한 사랑이 싹트는 경우도있다. 옛날 일본 영화에도 「백의의 천사」라는게 있었다.  폐병환자인「다나까미노루」와 폐병 요양소원의 간호사「이리에다까꼬」사이에 청순한 사랑을 그린 것. 불심이 인간적인 정감을 낳고 순정-애정 타오르는 정념으로 번지는- 그러나 끝내 사랑은 이루지 못하고 막을 내리는 슬픈 얘기였다.
백의의 천사를 소재로 한 사랑의 스토리는 비단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듣고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후 세상은 많이 변했다. 청순함 보다는 직선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더 높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녀의 여의사와 미녀의 간호사- 그녀들이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매력을 풍기는 것은 그럴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취향에 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을 허옇게 뜨고 몸부림치는 환자들 - 발을 보등 거리며 고통을 받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신은 어찌하여 인간에게 저렇게도 모질고 사나운 시련을 내리는고.... 하는
생각이 든다. 신과 인간 사이에 백의의 천사는 있다. 아픔을 덜어주고 슬픔까지도 달래주는 백의의 천사..... 그들에게서 노상 백합 같은 청순함을 느끼지만 때로는 장미같이 다정한 낭만을 느끼게도 한다. 몹시 아픈 주사를 놓는 간호사지만 기다려지는 간호사가 있다. 시계를 자주 쳐다보는 것도 그 간호사가 찾아올 시간을 재어 보기위해서 인 경우가 있다.
고단위 마이신 계통의 주사이기 때문에 잘 문질러 주지 않으면 주사 후 약기운이 도는 순간부터 엉덩이의 근육이 몹시 아프다. 손끝에 힘을 주어 오래토록 문질러주는 다정한 천사도 있지만 알콜솜을 거기 같다대고 주사침을 빼기가 무섭게 나가버리는 무정한 백의의 천사들도 있다. 그러나 병상의 환자가 그녀들에게 낭만을 느끼고 미니가운자락 밑으로 노출된 미끈한 각선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병세가 호전되어 가고 있다는 증표다. 그녀들의 표정이 아름답게 보이고 더러는 흰 가운 속에서 볼록 내민 가슴 언저리를 응시하게 되면 그 환자는 퇴원이 가깝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백의의 천사는 인생의 간호사, 오늘도 내일도 백합처럼 청순하고 장미처럼 다정하여라.
 
상수도 남부수도 팀장 최복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