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선 후보 살아온 길
백골부대(육군3사단) 근무 시절의 최기선 후보.
 “역대 최장수 인천시장”. 열린우리당 최기선 후보에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최 후보는 지난 1993년부터 민선2기인 2002년까지 10년간 인천시장에 재임하며 ‘최장수 시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최기선 후보는 해방을 석달 앞둔 1945년 5월15일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에서 빈농의 아들(2남6녀 중 장남)로 태어났다.
한·일 외교협정 반대시위 주도로 제적당한 후 입학 10년만에
서울대를 졸업하는 최 후보.
 1958년 김포 서암초등학교 졸업 후 상경, 서울 중앙중학교와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1964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입학 첫해에 6·3 한·일 외교협약 반대 시위에 참여했고, 이듬해 이협(민주당 전 의원) 등과 함께 학생 운동을 주도하다 제적당했다.
 제적당한 후 군(백골부대)에 반강제적으로 입대해 병장 만기 전역하였으며, 1969년 복학, 입학한지 10년만인 1973년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졸업 후 외환은행에 입사했으나 노조 결성을 주도하다 3년만에 자진 퇴사하고, 마산 동양전자를 거쳐 경남기업에 취직해 1년간 중동(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을 누볐다.
 1979년 귀국 후 당시 김영삼(YS) 신민당 총재의 공보비서로 정계에 입문해 야당에 몸담으면서 가시밭길 생활을 하게 된다.
 1983년 전두환 정권 시절 미국 망명 생활을 하던 김대중(DJ)씨와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1985년 신한민주당 임시대변인을 거쳐 1988년 13대 의원(통일민주당)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원내 진입 후 ‘YS의 적자’로 불리며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실장, 민주자유당 부대변인 등을 역임했고, 지난 1993년 YS의 지원을 업고 제7대 인천직할시장에 부임해 행정가 변신에 성공했다.
(주)경남기업 사우디아라비아 젯다 지사장 시절의 최 후보.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는 여당인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해 ‘야당 바람’을 잠재우고 수도권 유일의 여당 민선 광역단체장에 취임했으며, 1998년 자민련 후보로 재선에 성공, ‘실세시장’으로 송도신도시 착공, 인천국제공항개항, 인천대 시립화, 인천지하철 개통, 문학경기장 완공 등의 업적을 남겼다.
 최 후보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시장 후보로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적지 않다. 대체적인 의견은 재임기간 오늘날 인천 발전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이나, 지지도가 낮은 여당 후보로서 지지도를 끌어 올려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최 후보 측은 이에대해 “인지도가 워낙 높은데다 현 시장의 재임 성과도 미미해 곧 역전이 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다. /박인권기자 (블로그)pik
 
 
 
 
 
 
 
최기선 열린우리당 인천광역시장 후보 약력
 
 1945년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 출생
 1958년 김포 서암초등학교 졸업
 1961년 서울 중앙중 졸업
 1964년 보성고 졸업
 1964년 서울대 법대 입학
 1973년 민주화 투쟁으로 뒤늦게 대학 졸업
 1979년 신민당 총재 공보비서로 정계 입문
 1984년 민추협 대변인
 1985년 신한민주당 정책위원
 1988년 13대 국회의원/ 통일민주당 총재 비서실장
 1990년 민주자유당 부대변인
 1993년 제7대 인천직할시장
 1995∼1998년 민선 초대 인천광역시장
 1998∼2002년 민선 2대 인천광역시장
 종교 : 천주교, 병역 : 육군 병장 만기 전역(3사단)
 저서 : 혼자된 약속(95) / 깨어나는 지방은 아름답다(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