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오아시스의 어머니 `시르다리아'-7.천마의 고향을 찾아서
 제1부, 오아시스의 어머니 - 시르다리야
 7. 페르가나-천마(天馬)의 고향을 찾아서
                             -허우범 인하대 대외협력팀장 여행기

 “대원은 한나라에서 약 만 리쯤 떨어져 있습니다. 포도주가 있고, 좋은 말이 많은데 말은 피와 같은 땀을 흘리고 그 말의 조상은 천마(天馬)의 새끼라고 합니다.”
 기원전 126년. 장건은 한무제의 흉노정벌을 위한 연합전선 구축을 위해 대월지국을 찾아가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3년 만에 귀국하여 대원국(大苑國, 현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지역)의 한혈마 이야기를 보고한다. 한무제는 장건의 보고를 듣고 귀가 솔깃해진다. 하루에 천리를 달려 천리마로도 불리는 한혈마는 흉노를 제압할 수 있는 최신병기가 틀림없기 때문이다. 한무제는 곧바로 대원의 이사성(貳師城)에 있는 한혈마를 천금의 대가를 주고 사오도록 한다. 그러나 대원이 사신을 죽이고 거부하자 이광리를 이사장군에 임명, 대원국을 격파하고 3천 여 마리의 말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첨병마로 숙원이던 흉노를 제압한다.
 30명 남짓한 승객을 태운 소형 비행기에 몸을 의지한 채 ‘천사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페르가나를 찾아간다. 페르가나는 북쪽으로 천산산맥과 남쪽으로 파미르고원으로 둘러싸인 50㎢의 거대한 분지다. 시르다리야 상류지역에 속하는 페르가나는 인구가 900만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청명한 날씨, 바람에 간혹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구름과 동무하며 페르가나 계곡을 굽어본다. 태고 적부터 천산산맥의 빙하와 만년설이 미끄러진 흔적이 마치 거대한 강줄기를 보는 듯하다. 그 흔적이 끝나는 지점에 정지된 밭들이 편을 지어 뻗어 있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마을들이 옹기종기 펼쳐진 것이 하늘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문을 나서면 곧 옥토이니 그로 인한 풍요로움을 첫 방문인 이방인조차 페르가나에 닿기도 전에 하늘에서 이미 알아버린 듯하다.
 그러나 천마의 고향 페르가나는 더 이상 명마의 고향이 아니다. 어쩌다 만나는 몇 마리 말이 고작인 채, 그 옛날 페르가나 계곡을 누볐을 한혈마는 찾아볼 수 없다. 천마를 대신하는 자동차가 전성시대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 페르가나계곡의 안디잔에는 우즈-대우자동차 공장이 있어 티코, 다마스, 넥시아를 생산하고, 이 자동차들은 우즈베키스탄의 동맥이 되어 전 지역을 누비고 있다. 이제는 GM사의 소유가 되었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우즈벡인들은 ‘대우=한국’으로 알고 있으니 기업의 브랜드가 곧 국가의 브랜드임을 실감할 수 있다. GM사 또한 ‘대우’라는 상표를 내리지 못하였으니 중앙아시아에서의 막강한 위력을 다시금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볼 뿐이다. 천마의 고향에서 이를 대신한 ‘대우’를 빼앗기는 씁쓸함은 한무제의 침략으로 천마를 내놓아야만 했던 대원의 심정과 별반 다름이 없으리라.
 한무제의 공략으로 대원은 기원전 102년에 멸망한다. 그러나 최신병기인 천마는 중국과 주변국들의 보호 아래 품종개량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와 다투며 성장한 부여도 한나라가 망한 4세기 초에는 천마를 확보했을 것이다. 기병에 강했던 고구려 역시 천마를 탐냈을 것은 자명한 일이며, 무용총 벽화가 보여주듯 늦어도 5세기에는 천마를 보유하게 된다. 아울러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인 5세기에 최대의 영토를 개척하게 되는데, 이는 바로 천마군단으로 이뤄진 철갑기병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 세기 늦은 6세기에는 신라도 천마를 확보한다. 너무도 귀한 말이기에 오직 임금만이 소유할 수 있는데,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렇듯 천마는 시대와 국가를 넘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확보해야 할 최선의 경쟁무기였다.
 대원국시대의 수도로 여겨지는 아크쉬켄트는 페르가나 북쪽의 시르다리야 기슭에 위치해 있다. 드넓은 평야가 굽어보이는 곳에 위치한 아크쉬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유적지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폐허인 채로 손님을 맞이한다. 강을 따라 30m의 흙벽 성벽이 500여 m나 놓여있는 것이 얼마나 큰 도성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몽골의 급습으로 폐허가 된 성터에는 토기조각들이 지천에 널려있어 어디를 파도 금방 천마와 그 흔적이 나올 것만 같다.
 어디쯤 천마와 이사성이 있었을까. 방위와 성문터를 살펴보며 위치를 가늠해보지만 황폐된 대원국의 수도는 지금도 시르다리야의 침범으로 무너지고 있어 좀체 알 수가 없다. 이러한데도 추가발굴은 묘연하기만 하니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이곳 발굴책임자인 게다니 이바노프(53) 박사의 동동가슴을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페르가나 국립대 고고학과 제자들과 함께 온 이바노프 박사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페르가나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기 위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사실적인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현장학습을 주재하였다.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아직 미약한 시기에 이토록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박사를 보며,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순간, 찾아도 찾을 길 없던 천마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중국 지안 무용총의 수렵도에서,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에서 핏빛 땀을 흘리며 질주하는 한혈마, 그 위대한 하늘의 말들이 노도처럼 대륙으로 치달리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