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한걸 국립인천보훈병원 추진위원회 상임대표 ( 재향군인회 인천광역시회장)
백제시대에 비류가 세운 미추홀, 고구려 시대의 매소홀현, 그리고 통일신라의 소성현, 고려시대의 경원과 인주, 조선시대에 붙여진 인천은 19세기 후반에도 강화도 조약과 각종 통상조약을 통해서 다른 세계와 교류의 물꼬를 연 역사의 고장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역사의 획을 그은 사건은 단연코 55년전에 세계를 놀라게 한 인천상륙작전이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누릴 수 있었는지 자문해 보기만 해도 9월 15일 새벽 미명과 함께 월미도에서 시작한 그 작전에 거듭 감사를 드려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극소수 극렬분자들에 의해 인천상륙작전의 영원한 영웅인 맥아더장군과 반세기 전 풀뿌리로 연명하다시피 한 그 어려운 시기에 시민 들의 눈물어린 성금으로 조성된 동상에 대한 철거 논쟁을 보면서 직접 전쟁에 참여한 역전의 용사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을 금치 못하고 있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던 중 산화한 영령들이 하늘에서 보면서 뭐라 할 것인지 생각만 해도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이런 와중에 가뭄에 단비라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목소리가 합쳐져 우리의 자랑스러운 호국간성의 도시인 인천에 보훈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보훈병원은 일반 병원과 달리 주로 6.25전쟁과 월남전, 그리고 군 복무중에 부상당하신 국가유공자에 대한 전문적 치료와 재활 등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주안을 두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서울을 비롯하여 5개의 보훈병원이 있는데 유독 광역시 이상 가운데 인천이 수도권에 근접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제되어 있다. 800만명의 인천 등 서부권 주민을 감안해 볼 때 보훈병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당연히 존재해야 한다.
첫째로 근접 서비스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서울에서도 거의 동쪽에 위치한 현재의 보훈병원은 원거리로 인하여 서부권 보훈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 개발 현상으로 인하여 인구는 급격히 집중된 점을 간과하고 21세기 시대에 1980년대 현상을 갖고 판단하는 시대착오적 현상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둘째로 혹자는 지정위탁병원이 있기에 괜찮다고 할지 모르지만 보훈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수요자는 전투 및 군 복무 중에 주로 총상과 관련하여 부상을 입으신 분들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군 복무 관련 질환 및 휴유증에 대한 전문적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근거리에 소재한 보훈병원이 필수적이다.
셋째로 선진국을 지향하는 시대에 보훈제도가 뒤처져서는 아니 된다. 가장 보훈이 발달된 미국의 경우는 노벨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정도의 세계 최첨단을 자랑하는 보훈병원이 157개가 된다. 우리 실정에 단기간에 그 정도 수준까지 이르기는 무리겠지만 수도권 밀집 지역에 보훈병원 하나 추가되는 것은 아무리 양보해서 판단하여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어떤 정책에 대한 위로부터의 결정과는 달리 이번 인천 보훈병원 추진은 순수 민간분야에서 발의하여 시민들의 순수한 열정으로 결성된 점에 그 의미가 깊다. 현재 우리사회가 개인 및 집단 이기주의가 발호하는 가운데 이번 보훈병원 추진은 직접 이해 당사자인 보훈가족 보다는 제3자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보훈에 감사하는 차원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순수한 의의를 더해 주고 있다. 모두가 참여하는 민주주의 시대에 아래로부터 민의를 지향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주안을 두는 선진 정책을 추구한다면 이번에 인천시미니 모두의 정성으로 추진되고 있는 인천 보훈병원은 그저 발상과 논의 수준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정책 담당자와 최종 결정권자 모두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는 자부심으로 보훈병원 결정에 임해야 한다.
나라가 어려웠을 때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몸과 행동으로 보여주신 국가 유공자 및 보훈가족의 나라사랑 정신에 감사드리고 보훈정신을 승화, 발전시킨다는 차원에서 우리모두의 적극적인 성원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