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철역 출구에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지하를 달리느라 잠시 방향감각이 둔해졌더라도 밖으로 찾아나서기 편리하다. 이를테면 결혼식장을 찾아갈때 청첩장의 표시대로 따라나가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만나는 장소로도 십상이다. 미리 몇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으면 그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부평역 지하는 그렇지가 못하다. 부평역전의 한 갤러리를 찾아갔다가 낭패한 경험이 있다. 11번 출구라는 안내장 내용만 믿었는데 찾지 못하고 방황하느라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경인선 전철에서 하차 지하로 내려갔으나 지상으로 나가기가 용이치 않았던 것이다. 드넓은 상가가 북적거릴뿐 도저히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헤매보아야 11번은 없었다.
 그곳은 매머드 시장가였다. 그 길이 그 코스 같고 새로운 코너로 들어서니 한번 지나간 블럭이었다. 크레타왕 미노스의 미궁이요 중세유럽에서 일부러 밖으로 나가는 문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오락용 미로 같았다. 지나는 사람이나 상인들에게 물어보아야 모른다고 했다. 그곳은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었다. 만약 불상사라도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결국 어찌어찌 비좁은 출구로 해서 지상에 나올 수 있었는데 그것은 11번이 아니었다.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나 나오는 사람이나 서툴러 당황하고 있었다. 역광장서도 우왕좌왕 11번 출구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지상에 나와서야 찾을 수 있는 입구였었다.
 이제는 지하문화니 지하시대니 하는 말이 낯설지 않다. 대도시의 교차로마다 굴착했던 지하도가 거대한 상가로 되어 있다. 그곳은 지상생활 못지않게 이용에 편리하고 쾌적하게 꾸며져 있다. 상가가 호화로운 것은 물론 휴식공간도 갖춰져 있다. 총천연색을 뿜는 분수광장이 있고 수시로 공연도 전시회도 열린다.
 그런데 부평의 대표적 상가 명신당앞 삼거리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횡단보도를 요청하는데도 지하상가 상인들의 반발로 주춤하고 있단다. 횡단로가 아니면 지하의 통행로라도 불편이 없도록 넓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