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이었다.
한밤중에 시민단체 간부에게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평양 아리랑 공연 관람 가능해?”
10만 군중의 대집단체조라는 것 외에 뚜렷한 사전 지식 없이 ‘평양’이라는 말에 선뜻 꼭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고 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까지 믿어지지 않았다.그렇게 지난달 26일 평양 순안공항에 첫 발을 내딛었고 1박2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인천시민 등 250여 명으로 구성된 ‘제1차 광복 60년 기념 평양 문화유적 참관단’의 일정이 시작됐다.
이날 오후 8시, 10만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의 위용에 놀란 것도 잠시, 북측 주민들의 동포애가 물씬 담긴 환영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우리는 하나다’를 소리치며 한반도기를 흔들었고 그 속에서 ‘반갑습니다’ 노랫가락이 술술 흘러 나왔다.
경기장 안에 들어설 때의 벅찬 감동은 1만8천명의 학생들이 벌이는 카드섹션 배경대에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체사상이 담긴 억센 문구는 아리랑 공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다섯 아리랑 마당이 어우러진 1시간30분의 공연은 북측 집단 예술이 빚어낸 지상 최대의 ‘축제’라고 하면 과언일까?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온몸 구석구석까지 감동이 새롭게 느껴진다. 이런 공연이 바로 지난 2002년에 이어 두 번째로 북측이 마련한 대집단체조 아리랑이었다.
지난 주말 한 일간지가 아리랑 공연에 참여한 북측 주민이 가혹한 연습을 받는다는 글을 실었다. 거기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 북측에 아리랑 공연에 참가한 주민에 대한 반인권적 행위의 자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려는 움직임도 일었다.
아리랑 공연을 보며 10만 군중의 피눈물 나는 연습과 노력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공연이기에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관람했고 그 감동을 알리려 기사도 작성했다.
오랜만에 북측과 화해무드를 빌어 수 만 명이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아리랑 공연이 감추고 있는 남과 북의 정치적 이해는 잠시 뒤로 하고 우선 수 만 명이 북측을 찾아 그들의 생활을 보고 느낀 후 다시 논의했으면 한다. 그 후 정치, 외교를 말하고 아리랑 공연을 평가하자. /이주영기자 (블로그)leejy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