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포동 언저리의 중국집은 덕순반점 원동반점 그리고 지금도 있는 신성루 진흥각 등이었다. 그곳은 60년대초 가난한 신문기자들의 점심 요기를 해결하는 곳이었다. 미처 점심을 rj른채 마감시간에 쫓겨 편집국 사무실에 들어온 기자들이 전화로 자장면을 주문했다. 한그릇도 배달해 주었는데 물론 그것은 외상이었으며 주인이 외상장부에 꼬박꼬박 기입해 두었다.
 밀린 외상값은 월말 월급날 해결했다. 그러나 쥐꼬리 봉급쟁이들은 이미 가불을 해서 쓰느라 월급봉투는 빈봉투였다. 장부를 가지고 사무실에 나타난 장괘(키가 작은 주인)와 시비가 되고 “우리 사람 앞으로는 신문사에 외상 안줘 해”하면 그날 이후 자장면 배달은 그치고 다른 자장면집과 거래를 터야 했었다. 그곳이 서두에 적은 그리운 이름들이다.
 그렇게 고생하여 70대가 넘은 그때의 기자들은 자장면의 향수에 젖어 중국집을 찾는데 맛이 그때와 같지 않다고 말한다. 들척지근 뒷맛이 개운치 않고 하여튼 옛날의 자장면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값을 더 주어서라도 별도로 볶은 자장을 주문하여 먹어보지만 예전의 맛이 아니라고 푸념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진단하기를 원료부터가 요즘 아이들의 입맛에 맞게 달아졌다는 것이다.
 자장(炸醬)이란 장을 볶았다는 뜻이요 자장면 하면 삶은 국수에 자장을 얹어 내놓는 서민 음식이다. 원래 중국의 북경 천진 등지에서 국수를 돼지고기와 야채 따위를 함께 볶은 춘장을 얹어 비벼 먹던 음식이라고도 하고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처음 개발되었다고도 한다. 그런 것이 우리 입맛에 맞아 우리의 전통음식처럼 된 것이다.
 한창 IMF 불경기때 큰 인기이더니 자장면도 유행을 타고 맛도 그에 따라 변하는가. 복고 바람을 타고 잘게 썬 양파와 감자를 듬뿍 넣고 걸죽하게 국물까지 부은듯 ‘옛날 자장면’이 인기이다. 그 현장이 엊그제 북성동 차이나타운에서 열린 제4회 인천-중국의 날 기념축제요 3천5백원 하는 자장면을 2천원에 내놓았다고 한다.
 배고팠던 시절이 떠오르고 점심을 굶는 어린이들이 안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