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 사람을 부르려면 대개 북한의 김일성을 떠올리게 되고 그에게는 쉽게 김일성이란 별명이 붙어 놀림을 받았다. 그러니 아예 김일성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오죽 하겠는가. 그런데 50년대에 금곡동에 김일성이란 이름을 가진 이가 있었다. 그는 이름 때문에 유명했다. 지방선거가때마다 출마 화제가 되고 어린아이까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김일성은 아니라도 같은 이름 때문에 혼동을 일으키거나 화제에 오르는 경우는 많다. 신문에 조차 ‘동명이인’이란 제호로 두 사람이 대담을 하던지 인터뷰하는 기획보도가 되기도 한다. 요즘 교회의 신도들에도 동명이인이 있어 주보를 보면 이름 밑에 괄호하여 주소를 넣어 구분한다. 학교 학급에서는 영자A 영자B 하기도 하고 큰 영자 작은 영자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은 업소 전화번호부 뿐이지만 예전의 인명전화부가 있던 시절 그것을 들쳐 보면 단연 ‘김영자’라는 이름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거기에 ‘김영숙’ ‘김정숙’을 합하면 몇천명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 가히 ‘영자의 전성시대’였던 셈이다. 이쯤되면 이름을 알더라도 번호책으로는 도저히 전화번호를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전국 규모의 동명이인을 찾는다면 이보다 더한 혼동이 올수 있다. 10명대나 50명대 이상의 동명의 사람이 전체 국민의 70∼80%나 된다는 설이 있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 이름에 같은 이름이 많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될수 있다. 앞서와 같이 직장이나 단체생활에서 이름만 불러도 될것을 동명일 경우 수식어를 붙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긴 최근에 부계 성씨에다 모계성을 덧붙이기도 하고 순수 우리말 이름이 등장하고 있어 다소 해소되리라 보여지기는 한다. 국정감사장에서 안상수(安商守) 의원이 자신도 굴비상자 피해자라며 안상수(安相洙) 인천시장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하긴 신문사에서 조차 이 두분의 사진을 바꿔 싣는 실수를 범한 일도 있다.
 “나는 그가 아닙니다”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