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만 국가청렴委 공보관
도둑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그 중에서 외부 도둑과 내부 도둑이 있다. 말 그대로 외부 도둑은 외부인이 침입해 도둑질을 하는 자다. 내부 도둑은 내부인이 뭔가를 훔치는 자다. 두 도둑은 훔친다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누군가 법에 따라 도둑을 고발해야 한다면 고발 결과가 외부 소행이냐 내부 소행이냐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진다. 외부에서 침입한 도둑을 본 목격자는 “도둑이야”라고 소리칠 수 있다. 경찰에 재빠르게 신고하면 찬사를 받는다. 표창도 받는다. 반면 내부에서 공금을 몰래 훔친 도둑을 목격하더라도 여러가지 사정상 ‘도둑’이라고 신고하기 어렵다. 만일 도둑을 신고했다면 매우 복잡한 문제들이 생긴다. 내부 신고인(whistleblower)은 내부 도둑과 원수가 되어 일단 같이 생활하기 어려워진다. 또 내부 도둑과 연계된 그룹으로부터 고립당하고 박해도 받는다. 이른바 ‘왕따’로 전락하는 게 보통이다.
내부 신고인은 극히 정상인
내부 신고인은 일반적으로 조직 부적응, 강한 과시욕, 부정적인 성격, 충성도 결여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 학술 연구는 이를 뒤집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인디애나대 자넷 니어 교수는 1996년 ‘경영저널(Journal of Management)’ 가을호에서 ‘내부 신고인의 개인적 특성 연구’를 보고했다. 보고서는 내부비리 신고인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으며 더 오랜 경력과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상대적으로 연봉과 업무 성취도가 높고 상위직이나 전문직위인 경우가 많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함께 상대적으로 내부비리 신고인은 조직 만족도가 높고 직장에 헌신적이며 자신이 속한 조직이 타 조직보다 더 공정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니어 교수는 분석했다. 또 다른 연구 사례에서는 내부비리 신고 공무원은 미국 내에서 공공서비스 복무동기(Public Service Motivation - PSM)가 타 공무원보다 더 높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같이 두 보고서는 내부 신고인을 대체적으로 정상적이거나 건전한 구성원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신고인이 겪는 보복과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다. 영국의 유력 일간 ‘가디언’지 기자인 제임스 에레히(James Ehrlich)는 한 연구 결과에서 미국 내부 신고인의 90%가 해고 또는 강임, 26%는 정신질환 등 후유증, 17%는 주택 상실, 15%는 이혼, 10%는 자살기도, 8%는 파산한 것으로 각각 분석했다.
상사의 보복 두려워한다
내부 신고인의 증언을 보면 가장 무서운 보복은 상사나 조직의 박해보다도 평소 가까이 지내던 동료들의 냉대다. 박해 이유는 가만히 있었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잘못이 바로 잡힐 텐데 공연히 나서서 조직을 불명예스럽게 만들고 혼란과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두터운 신뢰와 애정을 쌓아 온 동료들이 조직의 박해 분위기에 굴복하여 내부 신고인을 고립시키는데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조직에서 내부비리 신고는 한계가 있다. 고로 국가가 강력한 고발 및 고발자의 보호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잠재적 내부 신고인을 강하게 편들어 고발 가능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패 국가일수록 내부 고발의 대상이 될 개연성이 많은 고위 공무원과 국회의원이 내부 고발 보호 법률을 제정할 가능성이 적다. 실효성 있는 내부비리 신고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그 체제의 부패척결 의지를 반영한다.
고발 보상액 최고 20억원 지급
이런 점에서 올해 새로 개정된 부패방지법의 내부 신고인 보호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부 신고인의 보상금 상한액이 종전보다 10배나 증가해 최고 20억원에 이른다. 막말로 내부 고발 후 괘씸죄로 인해 직장을 잃어도 평생동안 경제생활이 보장되는 상당한 액수다. 보상 기준에 따르면 480억원 상당액이 국고로 환수되는 비리를 고발했다면 20억원을 국가로부터 받게 된다.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하는 입찰비리, 수해복구 장부 허위기재, 공금횡령, 정부 예산낭비, 건설공사 비리 등의 사례가 수시로 터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내부 고발 한 건으로 ‘고난의 인생살이’를 벗어날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문에는 이 제도가 로또 복권보다 확률이 높다며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부패 방지를 전담하는 국가기관인 국가청렴위원회의 비리신고센터(전화 1398)에는 지난 7월 부패방지법 개정된 이후 실제로 비리신고가 늘고 있다. 개정 법률에서는 내부 고발이 공익에 현저히 기여하였다면 포상금도 보너스로 지급된다.
국가청렴도를 제고하기 위해서 모든 분야에서 부정한 업무에 방관하지 말고 용기있는 고발 정신이 요구된다. 외국 연구사례서도 보듯이 내부 비리신고인은 공정하고 치우침이 없는 지극히 정상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