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과거사 정리 원칙'을 분명히 밝히면서 `도청.연정 정국'이 `과거청산 정국'으로 급선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과거사 정리 및 청산 문제가 실질적으로는 도청.연정 정국과 맞물릴  가능
성이 클 것으로 보여 여야 대치 구도는 더욱 가파라질 전망이다.
    물론, 노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의) 문화를  극복하는데
걸리는 시간 만큼 민주주의 발전은 지체될 것"이라며 조속한 과거사 정리 및 청산을
정치권에 주문했지만, 늘 그렇듯이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가열되면서 정국은 예
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가까운 예로 친일진상규명작업 당시에도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부친
인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친일 경력이 논란이 되면서 과거청산  작업이  정치
논란으로 비화됐다.
    특히 이번에 노 대통령이 밝힌 `국가권력을 남용하며 국민의 인권과 민주적  기
본질서를 침해한 범죄' 부분은 과거 군사정권 및 그 연장선상에 있었던 정부를 겨냥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그 규명작업이 `친일' 관련 부분보다 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나온다.
    당장 국가공권력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는 옛 중앙정보부, 안기부는 물론,
국민의 정부 불법 도청 문제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공산이 높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측 인사들이 국정원의 `국민의 정부도 불법 도청' 발표 이
후 강력 반발한 이유 가운데 "김영삼 전 대통령(YS) 정권의 미림팀은  통신비밀보호
법상 공소시효(7년)가 지났고, 국민의 정부는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던 만큼 노 대통령의 이번 언급  이후
YS 정권 또는 그 이전까지로 공소시효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언급한 과거 청산 문제를 곧바로 도청문제와 연관돼 해
석하는 것을 애써 자제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대야 선전포고"라는  전여옥(田
麗玉) 대변인의 언급에서 드러나듯 팽팽한 긴장감은 전달되고 있다.
    여당도 당장은 `민.형사 시효적용 배제와 확정 판결에 대한 재심 사유 확대  필
요성'에 대한 야당의 위헌공세에 대해 "형벌 소급보다는 진상규명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라며 도청 문제와 관련된 직접적 공방은 비켜가는 모양새다.
    때문에 당장 정치권에서의 쟁점은 노 대통령이 제안한 `과거 청산을 위한  공시
시효 배제 및 재심 확대'를 둘러싸고 법률적 측면의 위헌 공방과 함께, `과거를  제
대로 정리하지 않고는 올바른 현재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여권과 `오히려  국
민 갈등을 부추기고 국민통합을 방해할 것'이라는 역사인식을 둘러싼 공방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청 관련 국정원 조사와 검찰 조사의 향배에 따라 노 대통령의  과거사
청산 문제가 도청 문제와 연관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또한 노 대통령의 경축사에 직접적 언급은 없었지만 정치적 지역구도 해소를 위
한 선거법 개정과 그 방법론으로 제시된 대연정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드러난  만
큼 여야간 이를 둘러싼 공방도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