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광복절 경축사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희망과 계획을 말하고 다짐하는 데 중심을 두었다. 그러나 오늘 지난날의 어두운 이야기로  경축사를 시작하려고 한다. 역사의 과오를 돌이켜보며 다시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후일의 경계로 삼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자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 세계를 휩쓸었던 제국주의  질서
때문이다. 또 지배세력의 완고한 기득권과 독선적인 사상체계,  부정부패와  목숨을
건 권력투쟁, 그리고 그로 인한 분열과 대립이 나라를 피폐하게 하고 끝내는 망국에
이르게 한 내부의 원인이 된 것이다.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오늘날의 역사를 보고 우리가 세계정세에 어두웠다고 하
지는 않을 것이다. 역대 정부가 냉전체제 붕괴 이후의 변화하는 세계질서에 잘 대처
해 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 국민은 한반도와 주변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이다. 그럴만한 충분한 안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 자신있게 말하기 어려운 일도 있다. 우리 역사에  뿌
리깊이 내려온 분열은 얼마나 극복되었으며 앞으로 또다른 분열의 소지는 없을 것인
지, 그리고 이로 인해 나라가 다시 위기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인지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크게 세 가지 분열의 요인을 안고 있다. 그 하나는  역사로
부터 물려받은 분열의 상처이고, 그 둘은 정치 과정에서 생긴 분열의 구조이며,  그
셋은 경제적 사회적 불균형과 격차로부터 생길지도 모르는 분열의 우려다.
    나라를 지속적인 발전의 토대 위에 단단하게 올려놓기 위해서,  그리고  또다시
나라가 위기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이 분열과  갈등의  원인과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우리가 역사에서 물려받은 분열의 상처는 친일과 항일, 좌익과 우익, 그리고 독
재시대의 억압과 저항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정리와 청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에 관한 특별법’까지 통과되면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팔아서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들이 누리는 역
사의 부조리도 해소될 것이다.
    대결 문화의 잔재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아직도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사건들이
많이 남아 있고, 그에 따라 피해자들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했으며 국가의 책임도 끝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또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을 통해 진상규명과 역사적인 정리를 할 수 있
게 되었으니 참으로 잘된 일이다. 다만 이 청산의 과정에는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
이 있다.
    우선, 피해당하고 고통받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여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과, 배상 또는 보상, 그리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신뢰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에 대한  국
가기관의 불법행위로 국가의 도덕성과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다. 국가는 스스로 앞장
서서 진상을 밝히고 사과하고, 배상이나 보상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규정이 있고, 올 연말에 출범할  과거사정리
위원회가 타당성 있고 형평에 맞는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도  부족하
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완하는 법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입법을 할 경우에는 확정판결에 대해서도 보다 융통성 있는 재심이  가능하도록
해서 억울한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에 더해서 국가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인권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한  범
죄, 그리고 이로 인해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의 배상과 보상에 대해서는  민·형사
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조정하는 법률도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국가권력을 남용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놓고 나 몰라라  하
고 심지어는 큰소리까지 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치 과정에서 생긴 우리 사회의 분열구조는 지역구도와 대결적  정치문화이다.
이 구조와 문화가 해소되기 전에는 끊임없는 분열과 대립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지역구도는 합리적인 국정운영을 불가능하게 한다. 정당이 이념과 정책이  아니
라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국회가 정책 토론장이 아닌 감정대결의 장이 되어버린
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지역구도가 국민을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우선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 정치의 지역구도는 해소될 수 있다. 그리고 정치
적 선동으로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버릴 수 있다.
    모든 정치인들이 지역구도를 옳지 않다고 하는 데도 선거제도는 고쳐지지  않고
있다. 지역구도가 정치적 기득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결단해야 한다.
과감하게 기득권을 포기하는 용기와 결단으로 나라의 미래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경제적 사회적 불균형은 나라의 장래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계층간,  지
역간, 기업규모간의 소득과 재산, 그리고 지식정보와 기회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
다. 양극화가 이대로 진행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지속적
인 성장기반마저 무너뜨릴 수도 있다.
    정부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경제를 활력있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우선이
다. 급격한 경기변동은 격차를 더 벌릴 뿐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하
기 때문이다.
    기업은 연구개발 투자를 더욱 늘려야 한다. 국내기반 없이 해외에서만 성공하기
는 어려울 것이다. 수출만으로 우리 경제가 계속 성장할 수는 없다. 내수기반을  키
워야 한다.
    기업은 인재를 키워야 한다. 우수한 인재를 골라 쓰는 데만 치중하고 기르는 데
는 인색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동조합도 이제 결단해야 한다.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도 정리해고가 어려운 제
도 아래서, 비정규직과 대다수 노동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는 현실이다.
    막강한 조직력으로 강력한 고용보호를 받고 있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해고의 유연성을 열어주는 한편, 정
부와 기업은 정규직 채용을 늘리고 다양한 고용기회를 만들어주는 대타협을  이뤄내
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