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천리’ 되나 ‘용두사미’ 되나.
검찰이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로부터 삼성그룹의 불법 자금 논의가 담긴 테이프(X파일)를 넘겨 받아 삼성측을 협박한 혐의로 재미교포 박인회씨를 이번 주 구속기소하기로 함에 따라 X파일 내용에 대한 수사 착수 여부가 주목된다.
참여연대의 고발로 시작된 이번 도청 사건은 공씨와 박씨 등  주요  피의자들이이미 구속됐고, 유출 부분 관련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이기 때문에 도청 전반에걸친 의혹 규명과 삼성의 불법 자금 수사만 남았다.
그러나 고발 사건인 삼성 불법자금 수사는 지난 9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소환조사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 했지만 관련자 추가소환이 없는 등  답보  양상을띠고 있다.
검찰은 외부에서 ‘삼성 봐주기 의혹’이 제기되는 데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분위기이지만 수사방침은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 “도청이 우선이지만 그냥 덮어두지는 않을 것”이라며삼성의 불법 자금 수사는 도청 수사의 윤곽을 어느 정도 잡은 이후 본격화될 것임을내비쳤다.
관측통들은 검찰이 X파일 내용 수사를 도청 수사 이후로 미룬 것은 X파일을  받아 보도한 MBC 이상호 기자에 대한 조사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사의를 표명한 홍석현주미대사 등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물리적으로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있다.
뚜렷한 물증없이 불법 도청 테이프 내용만으로 현직 주미대사와 재벌 총수를 소환 조사한다면 검찰이 오히려 면죄부만 주는 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학수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테이프 내용에 대해 부인하는 취지의 진술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져 검찰도 다음 단계의 수사를 위해서  ‘진술’에만  의존하는데 한계를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대검 중수부가 불법 대선자금 수사과정에서 밝혀내지 못한 용처 불명의 삼성 채권 500억원에 대한 수사를 재개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져 수사 절차상 ‘교통정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도청 수사가 시간을 끌면서 X파일 내용 수사가  지지부진하면  ‘물타기’비난이 빗발칠 수 있는 것도 검찰에는 고민거리다.
벌써 시민단체들은 검찰이 도청 사건 수사에 착수한 뒤 몇 차례 성명을 내고 고발 사건인 X파일 내용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11일에도 천정배 법무장관과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사건 뿐 아니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도청내용에 담긴 삼성그룹의 불법 로비자금 제공과 관련해서도 엄중히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악(巨惡)을 만나면 기뻐한다’는 검찰이 ‘천천히 가더라도 천리를 가는’ 수사를 진행할 지 변죽만 울리다 수사를 마무리할지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