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성(시인)
최근 ‘신도시’의 이름과 그 법정동 명칭을 인천시 연수구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송도동’과 ‘송도국제도시’로 정한 바 있다. '송도'가 우리 고유의 지명이라는 관점에서였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송도'는 명백한 일본식 정명(町名)의 부활인 것이다. 그 자초지종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구한말 인천도호부 시절, 현 연수구 일대는 인천부 원우이면(仁川府 遠又爾面)’으로 ‘송도’라는 지명은 애초부터 없었다. 한일병합 후인 1914년 일제는 행정구역을 개편했는데, 인천부 영역은 '원우이면'을 배제한 지금의 중구 일대로 축소되었다. 따라서 1918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제작한 ‘인천부’ 지도에 연수구 일대는 부천군 문학면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1936년 9월 26일 그 일부를 다시 인천부에 편입시킨 조선총독부 관보(호외)에도‘옥련리, 동춘리, 문학리’등은 편입대상 지역으로 명시돼 있어도‘송도'는 아예 흔적조차 없었다.
이로 미루어보면,‘옥련리’ 가‘송도정(松島町)’으로 바뀐 것은 1936년 이후의 일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왜 일제는 얼토당토하지 않게 육지에 섬의 이름일 수밖에 없는‘송도(松島)’라는‘언어의 쇠말뚝’을 박아 놓은 것일까? 일본인들이 섬과 육지도 구별치 못했던 게 아니라면, 그 같은 명명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에 유의하면서 순 우리식 지명을 뺀 일본식 지명을 유형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소화정(昭和町-부평동), 대정정(大正町-계산동), 명치정(明治町-부개동), 이등정(伊藤町-구산동), 화방정(花房町-북성동), 정상정(井上町-연희동)-왕호(王號)나 국가 공신 급에 준하는 사람 (2) 대도정(大島町-십정동), 조생정(爪生町-검암동), 목월정(木越町-간석동), 천상정(川上町-청천동), 촌상정(村上町-서곶 고작리)-인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청일촵러일전쟁에서 무공을 세운 원수 및 대장급 군인 (3)천간정(淺間町-가좌동), 낭속정(浪速町-서창동), 천대전정(千代田町-가정동), 삼립정(三笠町-삼산동), 미생정(彌生町-북성동), 송도정(松島町-옥련동)-청일촵러일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운 전함 (4) 도산정(桃山町-도원동), 일향정(日向町-고잔동), 동운정(東雲町-서운동), 용강정(龍岡町-인현동), 송도정(松島町-옥련동)- 일본 전역에 흔히 쓰이고 있는 지명 등이다,
따라서‘송도’는 일본 전역에서 두루 쓰이고 있는 섬 이름인 동시에 ‘송도유원지’ 등을 만들면서 일본 최대 관광지의 하나인 미야기 현 ‘송도’의 명성을 차용해 오고자 붙인 지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지형(地形)을 전혀 감안치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에 대한 열쇠는 일본 해군이 자랑하는 소위 ‘삼경함(三景艦)’이 지니고 있었다.
'삼경함’이란 무엇이고, 인천과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조선총독부 발행‘보통학교 국어독본 제7권(1914년 발행)’을 보면, 소위 ‘일본 3경(三景)’이 소개되어 있다. 일본은 미야기 현의‘송도(松島), 교토의 교립(橋立), 히로시마의‘엄도(嚴島)’를‘3경’이라 했는데, 일본 해군이 그 이름을 딴 순양함 3척을 취항시켜 소위 ‘3경함(三景艦)’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동학농민운동 이후 인천항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송도호'는 1892년 프랑스에서 건조돼 청일전쟁 때는 연합 함대 기함으로서, 러일전쟁 때는 제3함대 제5전대로 참전한 바 있으며 1908년 4월 대만 마공(馬公) 지역에서 선내 폭약고 폭발로 침몰해 370명 중 207명이 사망했으며 현재 나가사키의 사세보 해군묘지에 이들의 ‘순난자의 비’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이 인천을 교두보로 삼아 청일촵러일 두 전쟁에서 이겨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청나라를 쳤다는 것은 군국주의 일본으로서는 대단한 자랑거리였고, 그 전승을 기리기 위해 두 전쟁과 관련이 깊은 인천에 그를 상징하는 정명(町名)을 여러 군데 붙였는데 그 가운데의 하나가 '송도'였다. 따라서 문제의 '송도'는 일본의 지명이자, 전함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신도시와 그 법정동 이름을 '송도'로 정하자는 것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인들마저 그 부당성을 스스로 지적한 마당에 왜 우리가 오늘에 와서 이를 되살리려는 것인지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신도시’의 역사는 지금부터다. 벌써부터‘세계적인 브랜드’운운하기 전에 고정관념에 빠져 그 이름에서 일제 잔재 하나 씻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얼굴을 돌이켜 봐야 한다. 어쨌거나‘신도시’는 섬이 아니다. 애초부터 '송도(松島)'란 지명은 자격 상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