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죽지못해 산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게 요즘 형편입니다. 뭔가 하나라도 기대할만한 게 있어야 희망을 갖고 장사를 할텐데…”
“시장들 주변에 대형 백화점이나 할인점이 떡하니 들어서는 것을 보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천에 있는 시장이나 슈퍼마켓 등은 모두 문을 닫고 말 것입니다. 국민경제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요즘 어려움을 토로하는 지역 소기업·소상공인들의 외침은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최근 2∼3차례 ‘○○○위원회’ 위원자격으로 이들의 모임에 참석했던 필자는 언론에 쏟아붓는 재래시장과 슈퍼마켓, 음식점, 주유소 업주 등의 분노섞인 하소연앞에 상당한 부담과 함께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장기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전반적인 경기침체속에 소기업·소상공인들이 상행위를 하는데 따르는 어려움은 하나 둘이 아니지만 크게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대형 유통점의 무분별한 난립이다. 대규모 할인매장 한 개가 시내 한 복판에 문을 열 경우 최소한 반경 수㎞이내 재래시장 2∼3곳과 수 백여개의 상점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면서 지역 소상권을 일거에 황폐화시킨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이다.
현재 인천에 등록돼 있는 시장은 55개. 그러나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은 38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개점휴업 상태다. 불과 10여년사이 일이다. 15세기말 장시(場市)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 이래 5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시장이 거대 할인점에 밀려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대형 할인매장 주변 시장분위기는 마치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폐허’나 다름없다. 유통시장 개방을 앞두고 일본이 왜 10년전부터 그렇게 치밀하게 준비를 해왔는 지 이유를 알 것 같다.”(구월모래내시장사업협동조합 김성철 이사장)
상인들은 대형 유통매장과 관련, ▲정부가 규제완화를 추진하려는 방침을 중단하고 ▲몇몇 선례가 있듯이 조례제정을 통해 지방정부도 소기업·소상공인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대형 매장의 입지를 시내 중심이 아닌 외곽으로 못박거나 1차 농수산물을 제외시키는 등 판매품목도 제한해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불공정한 신용카드 수수료문제다. 현재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할인점 2.0∼2.3%, 홈쇼핑사는 2.3∼2.5%다. 이에 반해 소상공인은 무려 5.0%로 두 배가 넘는 돈을 수수료로 내고 있다. “잘못된 정책으로 발생한 부실을 만만한 소상공인들의 주머니를 털어 메우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올만한 상황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2003년말 현재 국내 중소기업은 295만개로 전체 기업의 99.8%(종사자 86.7%), 이 가운데 소기업은 286만개로 전체 중소기업의 97.1%(73.3%)를 차지하고 있다. 또 소상공업은 소기업의 91.4%인 262만개에 달한다. 이 수치만 보더라도 소기업·소상공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상공업체 대부분(97%·254만개)이 종업원 1∼4명으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우리가 흔히 ‘시장’, ‘슈퍼마켓’, ‘구멍가게’로 부르는 도·소매업이 30.3%로 가장 많고 숙박 및 음식업(21.7%), 제조업(11.3%), 운수업(10.6%), 수리 및 개인서비스업(8.9%)이 뒤를 잇고 있다.
지난해 6월 ‘소기업·소상공인위원회’가 조직된 뒤 9월 전국 11개 지역에 네트워크가 구축됐다.(인천은 지난해 12월) 모래알같았던 힘을 한 군데로 모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지난(至難)한 과정의 첫 발을 이제서야 내디딘 셈이다.
분명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들의 요구가 일정 부분 받아들여진다 해도 법적·제도적 규제나 지원은 분명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자의건, 타의건 멀어진 고객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서비스개선과 다양한 마케팅 등 업계 스스로의 뼈를 깍는 자구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