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실 인천시교육위원회 의장
돈 많은 사람들이 좋은 교육 서비스를 받으면 계층간에 위화감이 조성된다. 보다 교육여건이 좋은 학교에 발령받으면 다른 선생님들에게 위화감이 생기는 것도 같은 경우가 된다.
하지만 인사관리 규정이 개정 시마다 교원의 이익단체와 선생님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보다 유리하게 노른자위 학교로 가기를 원하고 또한 그런 방향으로 계속 개정되고 있다.
물론 교육여건이 좋지 않은 곳의 학부형과 학생이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교육현장에서 약자인 학부형과 학생이 보호되어야 하고 묵묵히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보호 지원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바탕은 있지만, 교원이익단체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선생님들의 생각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약자로 비추어지고 보호 지원되어야 한다는 평등의식이 깔려 있고 교육문제에 학생, 학부형의 선택과 선택폭을 얼마나 확대하느냐에 대하여는 행정편의와 교육현장에서 강자인 교원에 의하여 고려되고 있지 않다.
실제로 자녀교육을 위한 교육 현장 변화에 학부형과 학생의 선택폭에 맞추기 보다 교육현장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교원이익단체에 의하여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교육문제가 계속 엉키는 것에 대한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현재 세계는 교육에서 경쟁체제로 상황을 바꾸고 있고, 또한 학부형과 학생들의 요구도 만만치 않다. 어떠한 교육현장에서도 경쟁과 평가가 있어야 되지만 학생의 인성교육을 위하여, 혹은 학생들의 보호(?)를 위하여 계속해서 교육환경의 무경쟁 그리고 평가 없는 집단으로 바꾸고 있다. 변화하는 세계 사회에서 우리만 평등에 집착하지 말고 선의의 경쟁과 더불어 평가를 수용하여 수요자와 소비자에게 만족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교육환경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서비스에서 경쟁을 추구하여야 하는 이유는 우선 교육 소비자이며 수요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육에서 평등 평준화는 공급자(교사)와 교육 조종자(교육 행정 당국)의 선택일 뿐이다. 학부형의 자녀교육과 학생의 진로 선택은 질 높은 교육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어야 하고 또한 국가를 신뢰하고 교육에 참여하는 모든 소비자, 수요자에 대한 도리이다. 이미 많은 학생이 보다 질 높은 교육을 위하여 외국에 나가고 있다. 실제로 2004년도에 서울에서 초·중·고생의 조기 유학생 수가 1만2천319명으로 하루 34명꼴로 한국을 떠났다. 또한 많은 학부형이 기러기 부모로 일부 한국에 남거나 떠나고 있다. 이들이 국내 교육기관에서 선택과 선택의 폭을 넓힌 학교에 다닌다면 막대한 외화유출을 막고 또한 불확실한 외국에서 자녀에 대한 생활지도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또한 학교 교육산업에 의한 질 높은 교육에 의한 고부가 고용창출이 이루어질 수 있다.
다음으로 국내 교육의 질 높은 발전을 들 수 있다. 교육대학, 사범대학은 우수한 학생이 지원하지만, 임용 후 4∼5년이 지나면 가장 경쟁력이 낮은 지극히 평범한 교사가 되고 교감, 교장이 되지 못하면 무능력 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현 교육현장이다. 교사가 능력과 재능에 따라 잠재능력을 무한히 펼칠 수 있도록 교육현장에서의 경쟁과 평가가 교사에게도 자극을 줄 수 있고 매너리즘에 빠진 교육계를 역동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 체제의 국제화를 촉진하기 위하여서도 현행의 평등체제는 지양해야 한다.
바야흐로 국가별로 글로벌 경쟁이 시작되었다. 세계 각국은 질 높은 교육 서비스를 바탕으로 교육 개방과 더불어 인재 양성을 위하여 특화된 교육기관 설립과 지역별 교육 특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현재 지역별로 이루어지고 있는 영어마을 및 자립형 사립고 등이 그 예이다.
마지막으로 외국인에 대한 교육서비스 확대를 위하여 교육에서 평등의 기반을 바꾸어야 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투자하고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싶어도 교육문제에서는 현실적으로 살기가 힘들고 불편하기에 발을 붙이질 못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에 대하여 배우고자 하는 많은 외국 학생들이 오히려 외국에서 한국에 대하여 배우고 있고, 심지어 한국학에 관하여 배우기 위해 한국 학생이 외국에 유학을 가는 경우도 있다.
바둑에서 출발점이 다른 대국자가 몇 점씩 접고 두는 대국을 보면서 무조건 평등이라는 차원에서 맞두는 것이 과연 평등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교육에서의 평등은 선택의 폭을 넓혀 자유로운 선택이 이루어지고 선의의 공정한 경쟁이라는 수단과 평가를 통하여 달성되어야 하는 목표이다. 인적자원밖에 없는 국가에서 일방적인 평등은 획일주의를 낳고 국가와 개인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글로벌 시대에 교육 부분에서 수용자와 소비자들의 선택을 가로막지 않고 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경쟁과 평가가 되살아나서 살아 움직이는 질 높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