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맨스 랜드’, 절망을 위한 웃음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의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는 웃음으로 치장한 비극이다. 그러나 이 때의 ‘웃음’은 매우 독특한 색채를 지닌다. 박장대소도 아니고 차가운 비웃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입가를 자극하는 미소도 아니다. 그것은 피에로의 처연한 웃음을 닮았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사이에 벌어진 ‘보스니아 내전’. 두 적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참호 속에 세 병사가 유폐된다. 두 명의 보스니아 병사 치키(브랑코 듀릭)와 체라(필립 쇼바고비치), 그리고 한 명의 세르비아 병사 니노(르네 비토라작)가 긴장과 이완을 거듭하며 전쟁에 대한 성찰로 관객을 인도한다. 등 밑에 지뢰를 깔고 있는 체라는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어야만 한다.
 치키와 니노는 서로 살의(殺意)를 느끼는 적군 관계였다가, 치키의 옛날 여자 친구가 니노의 학교 동창임을 확인하는 친구 관계였다가, 다시 상대방을 공격하는 적대 관계로 바뀌는 등 어수선한 난장(亂場)을 선보인다. 말하자면 치키와 니노의 관계는 보스니아 내전이 품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 웃을 수만은 없는 우스꽝스러움에 대한 상징이다. 총탄과 포탄이 쏟아지는 참호 안은,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청년들이 우연하게 모인 선술집이나 다름없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진영, 그리고 유엔평화유지군 본부에서는 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중위가 동료를 끌고 구출작전을 펼치는데, 참호로 가는 도중 현지 군인들과의 의사소통 때문에 계속 정보가 헛돌게 된다. 장엄하거나 비참한 전쟁의 풍경이 아니라, 마치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현지 상인들과 시끄럽게 상품 흥정을 벌이는 시장을 연상시킨다. 어떤 전쟁도 그럴듯한 명분이 없음을, 그리고 전혀 합리적이지 않음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풍자하고 있다.
 여기에 각국에서 모여든 기자들의 소란스러움이 가세하면서 참호는 전쟁터가 아니가 하나의 거대한 증권거래소처럼 가벼워진다. 이 ‘가벼움’이야말로 감독이 말해주고 싶었던 전쟁의 참 모습이 아니었을까. 카메라는 전쟁터에 내던져진 병사들의 극한적인 불안과 공포를 포착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전쟁 중의 사소한 일상을 섬세하게 잡아냄으로써 일상을 잔인하게 찢어놓는 전쟁의 잔인함을 드러낸다.
 이 영화의 비밀 병기(兵器)는 클라이막스 이후에야 등장한다. 유엔평화유지군과 각국의 기자들이 모인 뒤에 독일 부대에서 온 지뢰제거 전문가가 찾아오지만 끝내 지뢰를 제거하지 못한다. 치키는 니노를 권총으로 죽이려다가 유엔평화유지군에게 사살되고 참호에 체라만 남겨놓고 모두 철수한다. 카메라는 절망적으로 누워있는 체라의 모습을 극단적 하이앵글(high angle)로 내려보면서 전쟁의 의미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린다. 전쟁은 자신의 육체(지뢰를 누르고 있는 체라의 몸무게)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불가항력적 자살행위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