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저 사람들이 당신들의 시중을 들고, 당신들이 어질러놓은 것을 뒤치다꺼리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그들 역시 태양 빛을 음미하며 바닷물 속에 몸을 담그고 싶어할 텐데도 말입니다!”
 에르네스토(체 게바라)는 남미 여행 중 들른 치치나의 집에서 그녀에 아버지에게 거칠 것 없는 비판을 가한다.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에르네스토는 이미 ‘평등’이 실현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비판의식을 내면 깊숙이 지니고 있는 청년이었다. 이를테면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의 남미 여행은 그들의 내면에 숨어있었던 열정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여정이었던 셈이다.
 이 영화에서 이상주의적 혁명가 ‘체 게바라’의 투쟁 정신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다. 이 작품은 그보다는 순수한 청년이 삶의 현장에서 숱한 민중들의 애환을 접하고,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의 휴머니즘을 자각하는 과정에 대한 보고서다.
 감독 월터 살레스는 이미 ‘중앙역’(1998)으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바 있다. 그리고 그가 여류 화가의 불꽃같은 삶을 그렸던 ‘프리다’(2002)의 각본을 맡았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월터 살레스의 작품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정체성을 끈질기게 모색하는 철학자다.
 광활한 남미 대륙이 아름답게 스크린을 채우고, 이 풍경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모터싸이클 ‘포데로사’ 뒤로 서정적인 남미 음악이 흐른다. 만약 ‘문제적인 개인’인 체 게바라를 떠올리지만 않는다면 이 영화는 청년들의 성년식(成年式)을 주제로 한 로드무비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만으로도 관객의 눈과 귀를 만족시킬 것이다. 그러나 에르네스토의 발길이 퇴락한 잉카 유물에 이르고, 추끼까마따 광산의 쫓기는 젊은 부부와 산빠블로의 나환자들과 만나면서 영상은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두 개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남미의 자연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과, 그 자연 속에서 버려진 채 고통에 신음하는 민중을 바라보는 체 게바라의 시선. 영화가 끝날 즈음, 체 게바라가 만났던 남미 민중의 얼굴들이 흑백 스냅 사진처럼 스쳐지나감으로써 시선의 정체성을 정립한다.
 긴 여정이 끝나고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는 비행장에서 헤어진다. 에르네스토가 탄 비행기를 쳐다보는 청년 알베르토의 얼굴에 이제는 노인이 되어버린 실존 인물 알베르토의 얼굴이 겹쳐지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장면은 논란이 일어날 법한 엔딩 씬이다. 감독이 체 게바라에 대한 감상적인 추억에 갇혀 있다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 체 게바라는 과거에 봉합된 어떤 낭만성이 아니라,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치열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