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출판도시, 90여개 출판사 모여
 가을비답지 않게 적잖은 비가 내리더니 이내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상하리만큼 대학입시를 앞두면 따뜻했던 가을햇살은 심술굿은 추위에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7일 치러진다.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보고 달려온 수험생들. 시험이 끝났다고 그들의 짐을 더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온통 ‘수험문제’로 번잡해 거의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시험준비에 지친 ‘심신’은 지나친 음주가무에 더 망가질 수 있으니 일단 피하고, 책 세상으로 한가로운 여행을 즐겨보자.
 시험용이 아니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요, 더 이상 ‘책’하면 진절머리를 칠 지 모르지만, 가방 가득 넣어다니던 참고서만 ‘책’이 아니다. 파주시 출판도시에 가면 이를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책이 있어 좋다.
 
 한강변을 따라 시원스레 뚫린 자유로를 달려 일산을 벗어나면 이내 우측으로 난 파주출판도시로 가는 진입로가 나온다.
 출판도시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잘 정비된 도로와 번잡한 도시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개성 강한 건축물들이다.
 이와달리 주변 환경은 사람손을 타지않은 채 방치된, 정돈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다. 주삣주삣 들풀이 나 있고, 그 사이사이엔 이름모를 들꽃이 자리하고 있다. 종종 새들은 정돈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 경계를 두지 않고 날아다닌다.
 1989년 9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서, ‘인강성 회복을 위한 도시,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로부터 10년만에 철새들의 낙원이던 습지 위에선 공사가 시작됐다.
 ‘한 권의 크고 아름다운 책’이길 원하는 출판도시 사람들은 때문에 건축주와 건축자들이 주관성을 버리고 건강한 출판문화와 건축문화를 만들자는 ‘계약서’를 채결했다.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뚫리는 공간 이외에는 최대한 사람손이 타는 것을 억제했다. 풀이 자라도 그대로 뒀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일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사람들이 들어가 일을 하는 건축물 또한 형태에서 높이, 재료까지 하나하나 지침에 따랐다. 건물이 들어서는 곳의 환경과 풍토, 일하는 사람을 충분히 고려했다. 급속한 산업화과 무분별한 개발, 서구문화의 유입 등의 결과가 우리네 삶의 공간을 일그러놓은 오류를 이 곳 출판도시에서만은 볼 수 없다.
 현재까지 50여개 건물이 들어섰고, 90여개 출판사가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앞으로 100여개 건물이 더 들어서면 이 곳은 책향기가 물씬 풍기는 출판도시로, 건축가들이 찾는 건축전시장이 된다.
 지난 10월중순 출판도시는 아이들을 초대했다. 출판도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어린이 도서전과 기획전시를 했다. 놀이한마당도 펼쳤고, 생태학교에 건축학교도 열렸다.
 출판도시가 교육도시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사시사철 문화행사가 열리는 ‘문화도시’를 꿈꾸고 있다.
 출판도시에 가면 갈대샛강에 놓은 다리 6개가 있다. 다산교, 은석교, 이석교 등등, 책과 관련한 인물들의 호를 따 붙였다. 출판도시 사람들은 가장 존경하는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이 도시의 심장인 아시아출판정보센터에 세웠다. 물론 6개의 다리 중 하나가 안 의사의 호를 땄다. 시험 끝난 수험생들에게 미안하지만 문제 하나 내본다. 이 다리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시험이 끝난 주말, 직접 출판도시에 가서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경품은 없다. /김주희·지청치기자 kimjuhee@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