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소설집 ‘천사의 날개’
 요즈음 언론매체에서 이슈화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이라크 전쟁의 참전 당위성이다. 민의가 참전과 참전불가의 양쪽으로 갈리고 더 나아가 이라크전의 정당성 논란까지도 가세, 그렇지 않아도 혼미한 정체성에 혼란을 가중시킨다.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사위의 혼탁함 때문인지 문득 옛 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월남전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내가 성장기에 치루어진 전쟁이었고 몇 년 위인 선배들의 참전기여서 그런지 세대차의 간격이 좁다는 느낌과 정서의 비슷함 때문에 실감있게 다가온다.
이원규 소설집 ‘천사의 날개’는 1994년 출간된 책이다. 오래전부터 참전 영웅들의 무용담을 심심찮게 들어온 터라 거부감없이 접근했지만 대화의 일부 중 ‘이 나라에 총 들구 와서 이 나라 사람을 죽이면서 도덕이구 양심이 뭐예 필요있어?’라는 대목에서는 맹목적인 전쟁과 그로인해 피폐해 가는 감정과 영혼들에게 연민을 갖게되고 어쩔 수없이 일어나는 전쟁에 대한 거부감이 당연한 것으로 느껴진다.
참전의 목적을 상실한 인물들이 겪는 고뇌와 그로 인해 점차 황폐해가는 인간성,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버팀목(내가 살기위해 적을 무참히 죽여야 하는 당위성)을 찾으려는 본성과 상실감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방황한다. 결국 흐려진 판단으로 작전 수행 중 무고한 양민을 죽게 만든 죄책감이 그 자신의 최후의 버팀목까지도 꺾이게 된다. 본연의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다음의 절규에서 보듯 처절하기까지 하다.
‘고개를 든 나는 석양이 어릉 어릉 비쳐드는 침침한 숲 속에 벌어진 정경에 아, 탄식을 올리며 눈을 감아 버렸다. 길 위에 6구의 시체들은 모두 확실한 양민 이였던 것이다. “광현아, 이걸 어떡하냐, 어떡하냐, 총이 없어, 아무도 총이 없어.” 신 하사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뒤따라 몸을 일으켰다. 이를 악물고 서서,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해 보니 상반신만 남은 노인,(중략) 다리 한쪽이 끊어진 중년남자, 모두 살 가망은 없었다.’
이렇듯 버팀목의 상실은 양심과 생존의 갈등으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시골 한 구석에서 자학하듯 살아가게 되고 끝내 자기의 전쟁도 아닌 전쟁 당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책감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 후, 그의 유품에서 날개를 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수 없이 발견하게 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인간 본성으로의 회귀를 암시한다.
그 그림은 그가 이 세상에서 더 이상의 삶을 살고 싶지않다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며,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양민의 목숨을 빼앗은 죄책감에 그 가 얼마나 시달렸는지를 알게 해준다.
어쩌면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현재도 앞으로도 똑같은 유형의 전쟁이 수없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우리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따끔한 경고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원규의 ‘천사의 날개’는 이 가을에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다시 나의 서상위에 놓여있다. /최원복 인천시 미술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