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발전연구원 `인천부사' 완역본
 1883년 외세에 의해 강제 개항한 이래 50년간 인천의 도시발달 과정을 담은 ‘인천부사’(仁川府史)의 완역본이 발간됐다.
 (사)인천문화발전연구원(이사장·이병화)이 완역한 ‘인천부사’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 ‘인천부’(현 인천시)에서 개항 5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인천지역 최초의 통사다.
 일본 관리들에 의해 일본어로 작성된 ‘인천부사’는 그동안 인천시사나 인천지역 관련 향토서의 기본자료로, 학자들이나 지역항토사학가들이 부분 번역 인용해 온 것이 전부였다.
 연구원측은 지난해 인하대 일어일본어과 원문에 대한 번역작업을 의뢰, 이번에 완역·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병화 이사장은 “인천부사는 인천지역의 첫번째 통사로 사료적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고 “그러나 일본인의 시각에서 이뤄졌다는 한계를 분명히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부사’가 개항이후 50년간 인천지역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어 향토사 연구에 충분한 사료적 가치를 갖고 있지만, 그 내용에 대한 해석이나 평가는 철저하게 한국인(조선인)의 시각에서 다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 이사장은 “자칫 번역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감수는 개항문화연구소가 맡았다.
 인천부사는 1천500쪽 분량으로 1883년부터 1933년까지 개항 이후 50년간 인천의 도시·재정·항만·교통 및 운수·무역·산업 등 방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당초 일본제국주의 정권은 부산·원산 이후의 개항지로 인천보다는 아산만을 선호했다. 인천부사는 왜 일본이 인천을 제3의 개항지로 선택했는지 그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개항의 결정적인 사건이 된 ‘운요호’ 사건은 강화 초지진 전투에서 영종진 전투까지 9월12일에서 22일에 이르는 전투과정을 일본군의 시각으로 상세하게 기록했다.
 인천부사에는 개항이후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인천(제물포)이 급속한 발전을 이뤄 인구 7만에 조선 제2대 무역항으로 거듭난 것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부심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이 이사장은 “그동안 ‘인천부사’는 향토사 연구에 기본자료로 활용해왔지만, 인용이나 해석과정에서 오역하거나 누락시킨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번 작업이 완벽하다 할 수 없지만 인천향토사나 ‘개항’을 연구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인천문화발전연구원(☎032-777-8866) 간, 1천461쪽, 10만원 /김주희기자 kimjuhee@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