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진의 영화읽기
  미완성의 블랙 코미디, ‘스텝포드 와이프’
 캐스팅된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스텝포드 와이프’는 괴기스럽고 공포에 찬 이야기를 블랙 코미디 문법으로 풀어나간다. 단지 톰 크루즈의 요정 같은 아내라는 이미지로밖에는 다가오지 않았던 니콜 키드먼은, 이혼 후 ‘아이즈 와이드 셧’(1999), ‘물랑 루즈’(2001), ‘디 아더스’(2001), ‘디 아워스’(2002), ‘도그빌’(2003) 등의 영화를 통해 독특한 연기파 배우로 다시 태어나 ‘스텝포드 와이프’까지 달려왔다. 여기에 남편역으로 ‘형사 가제트’에서 코믹하고 선한 인상을 주었던 매튜 브로데릭,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유머러스하고 괴팍한 캐릭터로 연기했던 글렌 클로스, 가수이자 연기자인 베트 미들러, ‘디어 헌터’에서 섬세한 내면 심리 연기를 펼쳐 보였던 크리스토퍼 워켄까지 가세하여 ‘별들의 잔치’처럼 보이는 영화다.
 1972년에 출판된 아이라 레빈의 동명소설을 기초로 한 이 영화는 이미 1975년에 브라이언 포브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적이 있다. 1975년작은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공포 영화였지만, 이번에 선보인 프랭크 오즈 감독 작품은 유머와 위트를 잔뜩 얹어 놓은 애플파이처럼 부드럽다.
 방송국의 진행자로 성공한 조안나(니콜 키드먼)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캐리어 우먼이다. 그녀는 여성 우월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큰 인기를 얻지만, 이 프로그램 때문에 아내를 잃은 남자가 아내와 그의 정부들을 총으로 쏘고 방송국 행사장에 난입해 조안나에게도 총을 겨눈다. 이 사건으로 방송국으로부터 해고된 조안나를 위해 남편(매튜 브로데릭)은 아이들과 함께 평안한 시골 ‘스텝포트’로 이사한다.
 상낙원 같은 이 시골 마을은 아름답고 친절한 아내들, 행복한 삶을 만끽하는 남편들로 동화 속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아내들은 한결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복장과 상냥한 미소로 남편들을 위해 봉사한다. 조안나는 이곳에서 여류 작가인 바비 마코비츠(베트 미들러)는 지극히 이상적인 이 여성들에게서 심상치 않은 음모를 예감한다. 이곳에 모인 아내들은 모두 예전에 사회에서 성공한 지도급 여성들이었고 이 마을의 남편들이 아내들을 로봇으로 개조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미 바비도 로봇으로 개조된다. 남편 월터(매튜 브로데릭)도 이곳 남성들의 음모에 서서히 동화되어 결국 조안나마저 로봇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월터가 로봇 조정 장치를 작동하여 모든 여성들의 뇌 속에 입력된 정보를 지워버린다.
 이 영화는 이미 30년 전에 선보였던 남성 중심주의 비판을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주제 의식의 진부함을 드러낸다. 게다가 소름끼치는 상황을 코미디로 풀어버림으로써 진지한 문제 의식마저 희석해 버린다. 음울한 디스토피아 영화도 아니고 유쾌한 코미디 영화도 아닌, 어정쩡한 소재 불명의 작품이 되어 버렸다. 차라리 감독이 이 영화의 주제를 패권주의에 의존하는 미국의 피해의식 풍자로 설정했더라면 관객들에게 선명하게 기억될 작품으로 남았을 것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