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겸 전 경기도 투자진흥관(버밍엄대 파견)
유학이나 파견근무 등으로 장기 체류를 하기 위해 영국에 오는 사람들이 처음하는 걱정중의 하나가 운전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고 차량은 왼쪽으로 다니는 데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이들의 걱정은 공연한 기우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히려 조금만 지나면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보다도 훨씬 편하게 느끼기 조차 한다.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고, 처음 가는 곳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도로표지나 지도가 편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운전자의 양보정신 때문이다.
물론 영국인들의 질서의식이 모든 면에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 경우에는 설사 차가 오지 않더라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주저하게 되지만, 영국인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횡단보도를 건너 오히려 초록불이 들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을 다소 어색해지게 하곤 한다. 길거리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깨끗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영국인의 질서관념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이들의 운전 습관만은 부러울 때가 많다. 그 예로 우리의 경우 두개의 도로가 하나로 만나는 곳에서는 대개 지체가 있고 껴들어 오는 차량을 못 들어오게 차량 꽁무니를 물고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많은 영국인들은 쉽게 양보하고 여유있게 기다려 주곤 한다. 또한 요즈음 다소 험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긴 하지만, 운전시에 경적을 요란하게 울려대는 영국인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상향등을 켜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 데, 이는 상대방 차량에 대한 불만의 표시가 아니라 양보의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차량 범퍼에 가벼운 흠이 나는 정도의 접촉사고의 경우는 다른 차량의 흐름에 불편이 없도록 처리한 후 서로의 보험정보 등을 교환하거나, 크게 시비하지 않고 그냥 헤어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제 대도시가 아니더라도 출퇴근시의 차량 혼잡과 지체는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쉽게 짜증날 수 있는 운전도 서로 조금만 양보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기다려 주는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고행의 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비단 질서와 양보는 운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도 기본질서가 있듯이 가정, 학교, 직장 등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사회적 관계에도 질서가 있어야만 안정이 되고 편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월드컵을 치를 때 얼마나 아름다운 질서의식을 발휘하여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었던가? 전국 곳곳에서 수십만, 수백만의 붉은 악마들이 거리 응원을 위해 나왔지만, 조그만 사고도 없이 질서 정연하게 하나 되어 응원했었고, 이들이 떠난 자리는 깨끗이 정리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언젠가 파이낸셜 타임스 기자가 한국에 대한 특집기사에서 말했듯이, 한국팀의 월드컵 4강 진출은 단순한 축구만이 아니라 한국이 경제위기를 완전히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월드컵의 마지막 종료 휘슬이 울리면서부터 우리사회는 카드대란 등에 의한 경기침체, 북핵문제, 정치적 · 이념적 대결에 따른 사회혼란 등 모든 것이 잘못되고 꼬여만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기본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 양상이다.
우리민족은 위기에 강한 민족이라 하여 계속 도전과 혼란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온 국민이 세계의 흐름을 직시하고 다시 하나로 마음을 모아야 할 때이다. 그렇다고 상식과 원칙이 없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사회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우리사회가 진정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부터 시작하여, 사회생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들이 예측가능하고 원칙이 있도록 기본질서가 복원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질서를 바탕으로 한 차원 거듭나는 사회, 세계인이 인정하는 한국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